묵상자료 6475호(2019. 2. 7. 목요일).
시편 135:4-5.
찬송 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난 해는 1861년, 16대 링컨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습니다. 링컨은 2년 후 노예해방 선언문을 선포하고 17대 대통령에 재선되지만, 1865년에 남북 전쟁을 끝낸 후 암살을 당하고, 부통령 앤드류 존슨이 17대 대통령으로 취임, 링컨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채운 후 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룬 해가 1868년이었습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났을 때였지요. 18대 대통령으로 남북 전쟁 승리의 상징적인 인물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이 당선될 만큼, 미국에서 1868년은 남북 전쟁의 후유증과 절망이 남아 있을 때였습니다. 절망 속에서 필요한 것은 희망이지요. 세티머스 위너라는 사람이 <위스퍼링 호프/ 속삭이는 희망>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는데, 이후로 50년 동안 악보가 2천만부가 팔릴 정도가 팔렸을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희망을 속삭여주는 노래입니다. “천사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귀에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교훈을 속삭이듯 들려준다/ 어둠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폭풍우가 끝일 때까지 기다리라고/ 어둠이 사라지고 태양이 떠오르는 내일이 오기를 희망하면서/ 속삭이는 희망/ 오 슬픔에 찬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그대 음성이 얼마나 반가운지/ 땅거미 지는 황혼녘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들이 깜빡이지 않는가/ 그런데 왜 어둠이 우리를 찾아오면 낙심을 하는가/ 어둔운 밤이 지나가면 새날이 밝아오는데/ 속삭이는 희망 오 슬픔에 찬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그대 음성이 얼마나 반가운지” 천사가 속삭이듯 들려주는 위로는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도착, 1924년에 <희망의 속삭임>으로 번역됐습니다.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세티머스 위너가 아닌 엘리스 호손으로 알려졌는데, 두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티머스는 마크 메이슨, 폴 스턴튼, 퍼시 가이어, 엡슬리 스트리트, 엘리스 호손 등 이름을 여러 개 사용했습니다. 이름을 만들 때 주로 가족과 친척들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합니다. 주홍글씨를 지은 작가 나다나엘 호손이 어머니와 친척지간이어서 윌리스 호손으로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가 바로 <속삭이는 희망/ Whispering Hope>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9년 1월 27일 방송>
2. “베드로의 고백(27-30절)”과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31-9:1)”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고백이라는 말은 마음속에 깊이 담겨 있는 생각이나 결심을 밖으로 토해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울 때 하는 말을 사랑고백이라고 하고, 진리나 신앙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표현할 때 신앙고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백이라는 말은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말해야 할 때 하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행한 신앙 고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공동 예배를 드릴 때마다 사도 신조(혹은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신앙고백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누구냐 라는 물음은 이름을 묻는 말이면서 동시에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에 반해서 무어냐는 물음은 그 사람이 하는 일 곧 직업이나 역할 그리고 능력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례자 요한 등의 대답이 있었다고 하자,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아마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제자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을지 모릅니다. 주님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도 가장 가깝고 또 가장 중요한 사람이기도 한 배우자나 친하다는 지인에 대해서 깊은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로 허망하게 헤어지게 될 때, 땅이 꺼지는 슬픔과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그리고 제가 참 좋아했던 목사님이 갑작스럽게 별세하셨을 때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도 후회되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은 구세주이십니다.” 적어도 그 당시로써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대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구주이며,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전부이십니다 는 뜻이니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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