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421(2005.4.7. 목요일)

시편 8:1-5.

찬송 20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인 여론 조사기관인 갤럽의 회장이었으며, “긍정적 심리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연구했던 긍정 심리학의 개척자 도널드 클리프트는, 암투병 생활을 하면서 외손자 톰 리서와 함께 마지막 저서를 펴냈습니다. [당신의 물통은 얼마나 채워져 있습니까?] 이런 제목의 책이었는데요.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가 꺼낸 물통 이야기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보이지 않는 물통을 가지고 있다. 그 물통은 주위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따라 지속적으로 비워지고 또 채워진다. 그래서 물통이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끼고, 비어 있을 땐 고통을 느낀다. 물통을 채우고 있는 한 방울 한 방울의 감정은, 인간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물이 가득 찬 물통을 지닌 사람은 활기찬 에너지가 넘친다.”

   그렇다면 물통의 물은 누가, 무엇으로 채우는 걸까요?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물통을 지니고 있다고 한 클리프트는, 물통 말고 보이지 않는 국자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물통을 채워줄 수가 있는데, 그 때마다 내 물통도 채워진다는 것이죠. 반대로 그 국자는 다른 사람의 물통에서 물을 퍼낼 수도 있는데, 그럼 내 물통에서도 그만큼의 물이 빠져나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물통과 국자 이야기를 생각하며, 매순간 이렇게 주문을 걸어보시지요. 순간순간 긍정적으로 살아가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331일 방송>

 

2. 오늘 본문은 두 가지 주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1-6) 세례자 요한의 소명의식을, 다른 하나는(7-14) 요한이 촉구한 회개의 세례가 그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내용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흔히들 요한의 세례를 물세례라고 하며 동시에 회개의 세례라고 얘기합니다. 세례의 도구가 물이었다는 점과 세례의 목적이 회개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구란 필요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며,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도구에 대한 지나친 논쟁은 생산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수세냐? 침례냐? 의 논쟁 말입니다. 그러나 세례의 목적에 관해서는 훨씬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례가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의식이라는 점 말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라는 말은 빗나간 방향을 제자리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런 예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벌거벗은 자)에게 나눠 주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리들은 정한 세 외에는부과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회개입니다. 군병들은 사람들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터무니없는 소송)하지 말며, 받는 요(월급)를 족한 줄 알아야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제자리 찾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 선생은 선생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 공무원은 공무원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회개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들 인간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고발하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이런 회개는 일생동안 되풀이 되어야 할 일들일 것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삶에서 이탈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성 삼위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매번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것을 재세례라 부릅니다. 단 한번의 세례로 끝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번 회개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루터는 기독교인으로 사는 삶을 가리켜서 세례를 기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중생을 아우르는 것이 세례인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다시 사는 것이 세례의 참 의미가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