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422호 (2005.4.8. 금요일)
시편 8:6-9.
찬송 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흉악한 대리석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이 패석을 쓰게 해달라고 시 의회에 사용허가를 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켈란젤로였습니다. 패석의 사용을 허가받아 혼자 작업에 들어간 미켈란젤로. 긴 작업을 끝낸 다음 마무리까지 끝나고 작품을 공개했는데 미켈란젤로가 버림받은 패석으로 조각한 것은 이스라엘의 영울 다윗이었는데요 훗날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펴낸 제자 비셀린은 “이 만큼 짧은 시간에 볼품없는 돌덩이를 고귀한 기적의 예술로 바꿔놓았으니 그 솜씨는 실로 하나님과 맞설 만하다.”라고 회상했다. 다윗 조각상이 시청사 광장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광장에 조각상을 세우는 날 시장은 다윗의 코가 너무 크다고 투정을 부렸죠.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주저 없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톡톡 다윗의 조각상을 두들겼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늉뿐 돌을 두들길 때마다 떨어지는 돌가루는 그가 미리 준비해간 돌가루였습니다. 코는 건드리지 않고 내려온 미켈란젤로, 시장에게 묻습니다. “이제 어떻습니까?” 그러자 시장이 대답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이제 살아있는 사람 같습니다.” 제자 비셀린이 전하는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에서 두 군데에 밑줄을 그어봅니다. 하나는 버려진 패석에서 가능성을 본 것, 둘째 미리 준비해간 돌가루로 자신과 시장의 자존심을 지킨 것.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년 3월 22일 방송>
2.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또한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에 관한 세 가지 짧은 정보가 담긴 본문입니다. 15-17절은 세례자 요한을, 기다리는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는 군중들에게, 자신은 메시야가 아닐 뿐 아니라 자신이 메시야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기까지 합니다. 18-20절은 당시 권력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분봉왕 헤롯의 악행에 대해서 고발하다가 옥살이를 하게 된 내용이고, 21-22절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장면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주제는 첫 번째 말씀으로, “나는 누구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선 세례자 요한은 이른바 자신의 삶의 과제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게 됩니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까지도 세례자 요한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남다른 깨끗한 삶과 죄에 대한 민감성 등에서 메시야의 면모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만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아첨과 오해에 떠밀려서 빗나간 인생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성경에서는 르호보암 유다 왕을, 근세 역사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 분들에게는 남다른 긍정적인 면들이 많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소리에 시대를 읽는 정신이 흐려져 버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착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만은 자신에게 정직했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세례자 요한의 위인 됨이 돋보입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야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일생동안 힘써야 할 삶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뚜벅 뚜벅 걸어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모릅니다. 크던 작던 권력이라는 것을 쥔 사람들은 주변에 아첨꾼을 두고 싶어 합니다. 그들로부터 자신의 실제보다 훨씬 훌륭한 인물로 인정받고, 추앙받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소인배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며, 그들의 마지막은 부끄러운 자취만을 남기고 말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16절)이고 고백합니다.
3. 일주일에 3일을 봄 대심방일로 정하고 진행 중입니다. 저는 심방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는 것과 안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많은 오차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생각해 왔던 것처럼 건강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얘기들 속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결론은 우리는 모두 제 힘으로는 살수 없는 연약한 인생이라는 점과, 그래서 서로를 따뜻이 보듬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힘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을 함께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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