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664(2005.12.6. 화요일).

시편 82:5-8.

찬송 23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옷깃을 여미고 들어와 이 글을 씁니다. 아직 손가락 끝에는 찬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찬 기운보다는 손가락 끝에 남아있는 찬 기운이 덜한 것 같습니다. 두 손을 마주잡고 부비니 한결 낫습니다. 마음도 그러고 싶어 메일 함을 연 것 같습니다. 낮에 길을 걷다가, 내일은 조금 더 두꺼운 옷을 입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맞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가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데, 벌써 겨울이라니. 숲 속의 낙엽을 원 없이 밟아보려고 했었는데, 벌써 이렇게 춥다니. 불과 넉 달 전만해도 덥다고 호들갑을 떨던 우리였습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노오란 은행나무 잎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가을 여행을 꿈꾸던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같은 그 시간들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을까요? 무엇을 하느라 갈대숲도 그냥 보내고, 단풍도 그냥 보냈을까요? 사다놓고 먹지 않아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우유를 통째로 쏟아 버리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갈대숲도, 단풍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들이었구나. 내가 마시고 싶을 때까지 상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우유가 없듯이, 시간과 계절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내고 싶을 때 보내고, 보내고 싶지 않으면 보내지 않아도 되는 계절과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때가 되면 왔다가 때가 되면 가는 게 계절이고 시간이었습니다. 한두 번 경험한 일이 아닌데도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불쑥 깨닫고는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매번 애를 씁니다.

   인생의 겨울도 어느 날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요? 아직 시간이 많은 것 같아서 나중에 해야지 하고, 한쪽으로 미뤄둔 일이 산처럼 쌓여 있을 때 나타나서 이제 그만 정리할 시간입니다.” 하는 건 아닐까요? 갑자기 추워진 날 밤, 이런 생각해 보며 메일 쓰기를 끝마칩니다. 인생의 겨울만큼은 기다렸다가, 찾아오기를 아주아주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여유롭고 당당하게 그리고 담담히 맞이해야지.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1129일 방송>

 

2.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두개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가져올 혼란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던 때문에 부활신앙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종종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을 생각합니다. 한 줌 모래나 물을 담기에도 부족한 그 좁디좁은 품, 그것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좁쌀영감이 바로 저요, 여러분이 아닙니까? 어제도 제 아내와 TV 리모트 컨트롤을 가지고 실랑이를 했습니다. 그런 때면 아내는 <좁쌀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간들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나섰습니다. 사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좋은 이웃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많은 차이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그리 반색을 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가운데 놓고는 친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 보다도 더 무장을 하고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누구든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질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바리새인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깨닫고 계십니까? 바리새인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눈치 채십니까? 그들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신앙인지 모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최상으로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을 피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 자칫 하나님과 관계를 깨트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곁에는 이웃이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었을지 모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셔야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십계명의 첫 돌 판을 하나님 사랑”, 두 번째 돌 판을 이웃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3. “제가 가진 것, 따뜻한 피를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박주영목사님이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약 200회 헌혈하셨는데, 공식 통계자료는 168회라고 하십니다. 첨부한 사진은 박목사님 가족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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