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668(2005.12.10. 토요일).

시편 83:13-18.

찬송 3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늦은 밤 24시간 편의점 이였습니다. 행색이 초라하고 사는 게 고단해 보이는 흔적이 역역한 남자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계산대 앞에 20대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그 사람과 또래가 비슷해 보였습니다. 남자는 주춤거리며 빵을 하나 집는 듯 했습니다. 남자보다 앞서 계산대로 갔습니다. 그 때 편의점 문에 달려있는 방울이 딸랑딸랑 울리더니,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순간 조금 전에 들어와 빵을 하나 집는 듯 했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노신사를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던 노신사는 방금 자신을 밀치고 나간 남자의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듯싶었습니다. 그 순간 계산대 앞에 서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노신사의 눈길과 계산대 앞에 서있는 남자의 눈길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방금나간 남자는 빵을 들고 나가면서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계산대 앞에 서있던 남자가 매장으로 걸어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 남자의 팔을 노신사가 말없이 힘주어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남은 한 손으로는 지갑을 꺼냈습니다. 매장으로 나오다 팔을 붙들린 남자는 노신사를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말없이 노신사에게서 빠져나와 조금 전 행색이 초라한 남자가 주춤거리며 서 있던 진열대 앞으로 다가가 빵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집어 들었던 것과 같은 빵인 것 같았습니다. 진열대에서 빵을 들고 다시 계산대 앞으로 온 남자, 계산기에 그 빵의 가격을 찍고는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기 안에 돈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빵을 진열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묵묵히 지켜보던 노신사는 말없이 돌아서더니, 맥주 두개를 꺼내들고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계산을 마친 노신사가 나가고 나서야, 내가 고른 물건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건네주는 남자를, 다시 한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5127일 방송>

 

2. 말세라는 말이 생뚱맞게 들리는 시대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어가 된듯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세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긍정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생명과학이나 우주과학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들이 바로 이런 한계에 도전하는 증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세라는 말을 영원한 미래로 밀쳐낸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말세를 뒤로 밀쳐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세의 징조들은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의 출현>(5)이나, <온갖 난리들>(6), <민족주의와 배고픔의 문제>(7), <예수 이름 때문에 순교자 생김>(9), <미움이 가득 참>(10), <거짓 선지자들의 떼>(11), <불법과 무정함>(12) 등이 날로 더해지고 있음이 현실인 때문입니다.

   말세에 대해서 우리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부터 풀어보고 싶습니다. 말세는 적어도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주적 파국입니다. 문자 그대로 온 우주가 멸망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우주적인 파국은 예수님께서 재림주로 오시는 선행(先行)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적 파국은 하나님께만 알려진 비밀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파국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맞게 될 말세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의 임무가 끝나는 때를 의미합니다. 이런 개인적 파국은 우주적 파국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우주적 파국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써 맞는 개인적 파국은 우주적인 파국과 직접 연결되는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나는 사람에게 있어서 우주적인 파국보다 더 큰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개인적 파국을 누구도 계산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을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견디라는 말씀은 매일 매일 삶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라는 말로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말세를 긍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이번 한 주간은 고단한 연속이었습니다. 한 해 동안의 교회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임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저는 매달 보고서를 준비해 두어서 12장의 문서만 차례로 분류하면 되기 때문에 수월한 편일 것입니다. 항상 그렇지만, 받은 은혜는 넘치는데 살아온 모습은 많이 초라할 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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