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500(2010. 12. 16. 목요일)

시편 시 20:6-9.

찬송 8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동물들의 보호색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2중적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그런 곤충이나 초식동물의 보호색은 연민뿐만이 아니라, 경탄마저 불러일으키지요. 나뭇잎 모양이나 줄기 모양을 하고서 나무에 달싹 붙어 있는, 그 작고도 여린 곤충들에게서는, 그 힘없는 종족이 택한 마지막 생존 양식의, 경이로움마저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독을 품은 뱀이나 맹수들의 보호색은, 두려움과 불쾌감을 자아낼 뿐이지요. 자신의 배를 더 빠르고 쉽게 불리기 위한 방편, 생존본능을 넘어선 어떤 욕심으로 읽혀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라는 말이 있지요. 선택을 분명히 하지 않고, 몸을 도사리는 우리 안의 보호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그런 보호색을 대할 때에도, 역시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댈 곳도 없고 목소리 높일 힘도 없는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수동적인 보호색은, 마지막 선택이라는 절박함마저 깃들여 있지요. 하지만 학력과 직업 경제적인 조건들에서 상대적으로 누릴 것이 많은 사람들의 택하는 침묵이라는 보호색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리영희 교수는,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분류를 했고요, 그에 따른 책임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식인은 가만히 있는 것으로 가장 안전한 중간지대에 머무르는, 그 비겁한 보호색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남겼지요.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이렇게 밝혔지요. 지식인으로써의 기득권을 이 사회에서 누리고 싶다면, 자신의 보호색을 벗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당당히 밝히고 행동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난 현대사의 증인인 그 분께,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귀한 자세는, 바로 그 엄정한 계산 법이도 하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0126일 방송>

 

2.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이 말을 아직도 믿으시는지요. 불의한 법과 불의한 제도가 얼마든지 많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는 반상제도며, 남녀를 차별하는 뿌리 깊은 관습이며, 기득권층을 보호하는 법률들이 엄존하는 것은, 이사야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입니다. 까닭은 언제나 법을 만들고 허무는 것은 세력가들의 몫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굽은 법해석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10:1-2).

하나님은 이런 역사를 낱낱이 기억하고 계시며, 하나하나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새 이스라엘인 우리들이 지금 제 정신을 차려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천사를 보내주셔서 위태로운 길에서 지켜주시고, 절실한 필요를 따라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다면, 지금 우리를 또 다른 천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한 기업 총수가 자신의 회사에 위장 취업해서, 말단 사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삶을 나누는 얘기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익창출에만 골몰해 있는 자신과는 달리,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사람답게 살려고 서로 보듬어 주고 마음을 나누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세상과 삶을 새롭게 이해하고 감사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런 기업총수를 언제나 만나게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이 작은 천사가 되는 그날이 아닐는지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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