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620(2014. 1. 9. 목요일).

시편 시 2:1-6.

찬송 42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도, 무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훨씬 더 황홀한 삶이 전개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생각, 내가 느끼는 느낌, 여기에 대해 동의하지도, 공감하지도 않는 사람을 대하기란, 언제 겪어도 참 난감한 일입니다. 어떤 철학자의 농담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상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의견 차이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데, 꽤 설득력 있게 와 닿습니다. 더구나 지금 내 앞에서 팔짱을 낀 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세상에 둘도 없는 딱 한 사람, 애인이나 절친한 친구, 남편 혹은 아내 자식이라면, 서운함은 몇 배 더 커지고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의 느낌이란 내 몸에 붙어 있는 눈이, 내가 보고 싶은 것과 다른 것을 보려고 하고, 내 몸에 붙어 있는 다리가, 내가 가고 싶은 곳과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붙어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겼지, 떼어놓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더 속이 상하고 화가 납니다. 이쯤 되면 갈등의 양상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지요. 처음의 문제가 됐던 다른 생각 다른 느낌에 대한 토론은 실종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너는 왜 그런 사람이냐고 입씨름을 보입니다. 여차하는 순간, 파국으로 갈 수 있으며, 그쪽으로 가느냐? 마느냐는, 값싼 자존심에 달려 있습니다. 자존심을 버리면 편견이 보입니다. 내 생각 내 느낌이 편견일 수 있고, 나와 둘도 없는 사이니, 같은 생각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 눈 같고 내 다리 같았던 것을 수월하게 떼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는 두어 발자국 떨어져서, 나와 다른 것을 바라보고, 다른 곳으로 가는 다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그들이 들려주는 다른 세상 이야기가 흥미로워집니다. 서로 똑 같은 사람이라면, 한 개의 세상을 살았을 텐데, 다른 덕분에 두 개 세 개 다채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말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도, 무수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훨씬 더 황홀한 삶이 전개될 것이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16일 방송>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계시의 말씀입니다.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보여주는 말씀인 때문입니다. 많은 자연과학자들이 빛을 생명의 근원이라 얘기합니다. 모든 힘(energy)의 원천인 때문일 것입니다. 빛이 없이는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모든 자연도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빛은 다양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역할 뿐 아니라, 열을 내게 하고 멈춰 있는 것들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식물을 자라게 하고 자연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 빛 때문에 온 세상이 안정감을 갖고 유지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빛이다.” 라는 이 계시를 우리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첫째는 우리의 근원에 대해서 눈을 뜨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 인생은 부평초 같이 뜻 없이 이리저리 떠돌다 끝나는 삶이 아니라,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라는 자각입니다. 뿌리와 바탕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뒤죽박죽인 절망뿐인 세상이라 하더라도,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서는 안 될, 단단한 뿌리가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더 이상 어둠의 자녀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진리와 평화를 만드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종교의 역할을 나라 사랑에 제한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호국불교 사상입니다. 종교나 신앙은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에 예속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훨씬 더 큰 영역을 살펴야 합니다. 물론 신앙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민족을 하나로 묶고 독립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일을 순기능으로 간주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기독교회가 그 역할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계속해서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민족과 나라의 안위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바리새인들도 그리고 지금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빛 가운데 속한 사람들이 아닌 때문입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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