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3947호(2012. 3. 7. 수요일).
시편 130:5-8.
찬송 45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경숙 작가의 [세상 끝의 신발]에는 순옥 언니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무척 따랐던 아버지의 친구의 딸이었지요. 얼마나 좋아했던지 순옥 언니의 뺨 근처에 오목하게 피는 보조개가 부러워서 거울 앞에서 머리핀으로 뺨을 눌러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좋아하면 닮아져서라도 공통점을 갖고 싶은 법이니까요. 그렇게나 주인공이 순옥 언니를 좋아했던 이유는, 다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순옥 언니는 내 장갑이나 스웨터에 일어난 보풀이나 밥 먹다가 떨어트린 밥풀떼기를 떼어 내 주기도 했고, 어깨에 치렁하게 내려와 있는 머리를 가지런하게 빗겨서 뒤로 묶어주기도 했다. 내가 텃밭에서 소를 뜯고 있거나 감자를 캐고 있으면, 함께 엎드려 뜯어주거나 캐 주었고, 도랑에 나란히 앉아 흙 묻은 손을 닦을 때면, 내 손을 끌어다가 비누칠 싹싹해서 닦아주기도 했다. 겨우내 찬바람에 손이 부르터 있을 것 같으면 순옥언니가 바로고 다니던 손 크림을 꺼내 내 손등에 바르고, 스밀 때까지 쓱쓱 문질러 주기도 했다. 함께 잠들 때면 이불을 당겨 내 가슴에 덮어주었던 기억도 난다. 그토록 다정했던 사람은 오래도록 잊지 못합니다. 장갑이나 스웨터나 손 크림을 사준 것도 아닙니다. 그저 붙어 있던 보풀이나 밥풀떼기 같은 걸 떼 주었을 뿐이고, 감자도 대신 캐준 것이 아니고, 옆에서 나란히 거들어 줬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건, 나에게 와서 머물렀던 따뜻한 눈길과 섬세한 손길과 순수한 마음. 세월이 흘러 순옥 언니는 일자리를 찾아서 멀리 떠났고, 오랜만에 돌아왔을 때, 주인공은 순옥 언니의 부츠를 문갑 속에 감추어 둡니다. 신발이 없으면 언니가 돌아가지 못할 줄 알았지요. 하지만 어머니의 낡은 털신을 신고 돌아갔고, 숨겨 두었던 부츠만 남아 버립니다. 그 후에 주인공은 봄날에도 여름날에도, 부츠를 꺼내서 그 속에 가만히 발을 넣어보곤 하지요. 처음에는 그냥 그래 보았던 것이, 나중에는 마음이 슬프거나 고독해 지면, 순옥 언니의 부츠를 끌어내려 그 속에 발을 넣어보곤 했다. 그러면 순옥 언니의 다정한 손길이 내 등을 다독여 주는 듯 했다. 토닥토닥,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저마다 다정했던 사람의 손길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정을 그리워합니다. 세상에는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으로는 사무치게. 오늘도.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1월 26일 방송>
2. 오래 전에 명동 성당 앞마당에서 한 평짜리 공간에서 하루 옥살이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프로그램의 목적은 법조인들로 하여금 옥살이의 고충을 경험하게 함으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함부로 재판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3일간의 옥살이를 통해서 요셉의 열 명의 형들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을 것입니다. 첫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늙으신 아버지를 속인 죄를 뉘우쳤을 것입니다. 셋째는 동생 요셉에게 행하였던 무서운 죄를 떠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잘 엿보게 하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삼일 째 되던 날 요셉은 그들을 불러 자신의 계획을 알립니다. 열 명 중 한 명만 남고 다른 아홉은 쌀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대신 다음에 또 쌀을 사러오려거든 반드시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히브리 방언으로 서로 논쟁을 합니다. 언제든 일이 틀어지면 불평과 불만은 쏟아지게 마련입니다. 자신들의 방언이라 못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한 그들은 20년 가까운 옛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려 했던 계획과, 동생들이 일을 그르친 전말을 말입니다.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들인데, 그래서 힘겨운 삶의 길목을 지날 때마다 가장 도타운 우의를 나눌 사람들인데, 사소한 다툼이나 시기심으로 죽일 생각까지 품을 수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조금만 더 길게 내다본다면, 원수처럼 살아야 할 이웃이란 없는 법인데 말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그게 미움이나 원망의 뿌리가 될 수는 없는데 말입니다. 그들 열 명의 형제들은 정말 오랜만에 마음속에 담겨있던 회한을 뜨겁게 토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음으로 인해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을 것입니다. 요셉의 지혜로운 처신은 형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하는데 충분했을 것입니다. 둘째 형 시므온을 볼모로 만든 것은, 자신을 버렸던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준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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