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102(2012. 8. 9. 목요일).

시편 24:7-10.

찬송 33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박쥐처럼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본 적이 있습니다. 똑바로만 서 있는 세상을 거꾸로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지요. 또 집에 들어오면 벽에 대고 물구나무를 서기도 했습니다. 집안 풍경과 식구들을 거꾸로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또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단어를 거꾸로 말하기 놀이도 많이 했습니다. 남들이 앞에서부터 똑바로 말하는 말을, 뒤에서 거꾸로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하기 싫었고, 하기도 힘들었던 똑바로 제대로 올바로.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졌습니다. 거꾸로 하다가는 정신 나갔다는 소리 들을까봐 무섭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말로 거꾸로 돼 버릴까봐, 잘못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남들 하는 대로 나란히 따라갑니다. 하지만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면서, 남들과 다른 인생이나 남들과 다른 성공을 꿈꾼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매튜 본이 연출한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1995년에 초연한 후로, 작품성을 물론 흥행까지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백조는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근육질의 남성들이었지요. 매튜 본은 거꾸로 발상해서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즐겁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봄이면 함평에서는 나비 축제가 열리지요. 지금이야 대표적인 봄 축제로 자리를 잡았지만, 사실 함평에는 나비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나비 축제를 열기로 했다고 하지요. 시골에서도 이렇게 나비 보기 힘든데 도시에서는 얼마나 힘들까 하면서요.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 하지만 다른데서 다 하는 유채꽃 축제나 메밀꽃 축제를 했더라면, 지금 같은 성공은 거두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까 안 된다 라고 할 때, 거꾸로 "왜 안 돼?" 이렇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끈질기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책의 제목이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보일걸] 그렇게 해서 달라 보이는 세상이라면, 우리네 사는 재미도 더해지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516일 방송>

 

2.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의 그리스도 부인 기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바깥 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습니다. 누구나 무슨 말이든 마구 토해낼 수 있는 그런 편한 자리입니다. 근거가 있는 말이든 낭설에 불과한 말이든, 닥치는 대로 지루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모여든 자리입니다. 그런 편한 자리에 베드로도 끼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비자(여자 심부름꾼)가 베드로 앞에 고개를 쳐들고 말문을 엽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고 말입니다. 뭐 그리 엄청난 고발도 아닙니다. 수천 명이 떼 지어 예수님을 따랐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그걸 시인하다고 해서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의 제자가 아니냐는 질문도 아닙니다그냥 많은 사람들과 함께 떡이나 얻을까 해서 따르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반응은 자못 심각합니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고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비자가 확인하듯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도 예수를 따랐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았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말입니다베드로의 대답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입니다. 맹세까지 하고 분명히 부인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이름 없는 사람이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고 자못 분석적인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합니다. 마침내 분명한 의지로 주님을 저주까지 했던 것입니다.

   21세기 베드로들이 우리 가운데 많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 것을 감추고 싶을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식당에서 조용히 기도의 손을 모으기가 민망할 때, 수저와 젓가락을 가져오면서 아주 잠깐 기도를 했습니다. 택시 운전수의 욕설에 끼어들었을 땐, 목사인 것은 고사하고 기독교인인 것까지도 감추었습니다. 물건을 싼 값으로 사고 싶을 때도, 개독교라고 열을 내는 사람들 속에서도,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깊이 숨기려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작은 이익이나 부끄러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맹세나 저주까지는 하지 않았노라고 안도의 숨을 쉴 뿐입니다. 매일 우리가 교회당 위의 장탉을 바라볼 이유입니다.

 

3. 어제 오후 늦게 호치민으로 돌아왔습니다. 필립핀에서 오신 선교사님 일행과 강릉에서 오신 교수님 덕분에 편한 차를 타고 말입니다. 7년전 필립핀 선교 중 소천한 저의 제자 고 김대진 목사님을 잘 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세상은 참 좁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언제나 강하게 느낍니다만, 이번 여행에도 하나님께서 동행하셨습니다. 저를 도운 모든 분들에게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치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