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237호(2012. 12. 22. 토요일).
시편 58:4-6.
찬송 24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치에 안 맞는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한테 쓰는 말인데요. 봉창은 무엇이고, 또 왜 그냥 두드린다고 하지 않고, 자다가 두드린다 라고 표현했을까요? 우리 한옥에서 창호라고 하면 창과 호가 결합된 말인데요. 17세기 전까지 건물을 드나드는 문은 호라는 단어로 불렸습니다. 그러니까 창호란 창과 문을 통칭하는 말이 되겠지요. 요즘에는 창문이라고 부르지만요, 원래는 이렇게 창과 문을 구별했고요, 창호지라고 하면, 창호 문에 바르는 종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특히 한옥에서는 달빛 가득한 밤에, 방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면 달빛에 비춰서 창호지에 일렁이는 나무 그림자가 운치를 더해줍니다. 겨울을 앞두고는 잘 말린 국화를 창호지와 함께 바르는 감각을 발휘했고요. 혹은 아무 것도 더 하지 않아도 창살문양 그 자체로 참 곱습니다. 그런데 모든 창에 창호지를 바른 건 아닙니다. 봉창이 바로 그런 창이었지요. 일반적으로 한옥에서 건물을 드나드는 문을 제외하고는, 창과 문은 비슷하게 생겼고요. 그래서 구분을 못하는 사람들은 창으로 드나드는 결례를 범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봉창은 이런 창문들과 완전히 다르게 생겼습니다. 벽에 그냥 구멍을 뚫은 형태로 여닫을 수 없고요. 또 날짐승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살대를 엮었지만, 따로 창호지를 바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봉창은 주로 부엌 같은 곳에서 연기를 내 보내기위해서 만든 작은 환기창이었지요. 게다가 한옥에서 부엌은 방과 멀리 떨어져 있고요. 웬만하면 자다가 갈 일은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린다는 것, 누가 봐도 너무나 엉뚱한 행동일수 밖에요. 당시에 살아가는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는 우리네 속담이 참 흥미롭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2년 9월 21일 방송>
2. 똑 같은 삶을 사는데도, 똑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도, 또 같은 선생님께 배웠는데도, 달라도 너무 다르게 살아가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다름이란 이해력 또는 해석력의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혹은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임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요. 물론 정반대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아마도 이럴 수밖에 없는 데는 많은 것들이 그 배경에 깔려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바르게도 또는 뒤틀리게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르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짊어져야 할까요? 이런 현상은 삶에서만이 아니라 신앙에서도 종종 엿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언제나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고 뒤틀리도록 비틀어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과연 그 사람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굴곡진 삶의 뒤안길이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들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둘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마저도 비틀어서 아니면 뒤집어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리고 사람의 경험을 최선의 해답인양 대입해 본다면, 엄청난 착오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라고 지적합니다. 비웃고 빈정대는 짓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르면 모르겠다고 한다든지, 이해가 안 되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제 생각이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비웃고 비꼬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잘 다녔던 제 친구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은 세상을 다 안다는 식이며, 여전히 바보노릇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빈정거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이 언제 강림하겠느냐? 내 어릴 때도 그리고 지금도 종말론으로 겁주기냐는 식입니다. 오늘 그런 뒤틀린 생각이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롱하는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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