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작인 <고뇌와 열정>은 원 제목으로 하면, <고뇌와 환희>가 더 맞지만, 영화 내용을 보면 <고뇌와 열정>이 맞는 것 같다.
어제 모처럼 교단 행사에서 설교를 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몸이 무겁고 목 둘레가 뻐근했지만 실버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감상한 영화는 <고뇌와 열정>이었다. 예고편처럼 이탈리아와 로마 플로렌스 피렌체 등을 찾아가며 조각품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한참 진행되었다. 가령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걸작인 <다윗 상>을 비롯해서 큰 돌덩어리를 보고서 그 속에 모세가 숨을 쉬고 있다는 등, 조각가의 혼이 소개되는데 앞으로 조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곳에 있는 성모상(피에타 상)을 비교해 가며 설명하는 것은 그림이나 조각에 문외한이 내게는 큰 자극을 주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시스티나 성당을 짖고 벽화는 끝났지만 텅빈 천장에 천장화를 미켈란젤로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그는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며 거절하지만 교황은 억지로 권한다. 결국 교황과 계약을 맺고 천장화에 착수한다. 이른바 프레스코화법의 그림인데, 프레스코란 이탈리아어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방금 회(灰)를 칠한 위에 건조가 채 되지 않은 덜 마른 벽면에 수용성 그림물감으로 채화(彩畵)하는 기법이다. 그림물감의 종류는 토질(土質)·광물질의 것으로 색수는 적다. 그림물감은 벽에 흡수되어, 벽이 마를 때 표면에 고착하므로 빛깔은 변색되지 않고 내구력이 있다. 다만 말라감에 따라 광택을 잃고 발색이 둔화되는데 거기에 프레스코 특유의 차분한 색조(色調)를 볼 수 있다.
영화는 화가의 고뇌하는 심리 현상을 보여준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데다가 그 넓은 천장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한다. 그러다 고생해서 그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긁어내기도 하고 물감을 쏟아 부어 폐기하기도 한다. 마침내 채석장 카라라로 도망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영감을 받는다. 하늘의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서로의 손가락이 마주 닿을 듯 내미는 그 유명한 장면이다. 한편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끝까지 찾아내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교황과 화가는 서로의 약점을 잘 이용해서 정치와 그림을 지속시키는 대화와, 그림을 매개로 성경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별미로 작용하고 있었다. 교황이 스페인의 원정군이 늦게 도착함으로 프랑스와 영국 군에 쫓기는 와중에 교황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어린이 찬양대들이 임종 찬송을 부른다. 그 엄중한 자리에 미켈란젤로는 자신은 더 이상 천장화를 그리지 않겠노라고 허락을 받으러 왔다며 속을 지른다. 교황은 제대로 교황권을 지키라고 한 마디 하고 떠나간다. 그가 교황의 침실을 떠나기 전에 교황은 벌떡 일어난다. 죽어가는 교황을 일으켜 세운 것은 화가였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화가가 진척이 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을 본 교황은 또 다른 화가 라파엘로를 등장시켜 경쟁구도를 만들면서, 미켈란젤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등이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백미는 미켈란젤로가 노인으로 묘사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따뜻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묘사한 아담에 대해서 교황의 질문과 화가의 대답이 어린 소년들과 같다. 교황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화가는 인자한 하나님으로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데, 그런 차이는 서로의 현실 경험과 심리 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에서 화가는 성경 천지창조의 하나님과 창조된 인간을 생각했다고 하며, 교황의 살벌한 심리 세계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면서 교황은 자신보다 화가의 신앙이 훨씬 더 올바른 것 같다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그림을 보고 싶어서 몰래 성당을 찾아와 숨어서 지켜보는 교황과, 높은 천장에서 내려다 보며 눈을 마주치는 화가의 눈길이 익살스럽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나눈 말, “언제나 마칠 것 같으냐?” “제가 끝내는 날입니다.” 이 말은 나라의 운명이 엄중한 시간에도 둘 사이에 입술로만 나누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다.
교황역에 렉스 해리슨이 미켈란젤로에 찰턴 헤스턴이 열연을 한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명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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