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 꿈을 꾸곤 하는데 전혀 엉뚱한 내용이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어제는 우리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스페인의 과자 <보닐라 아라 비스타>가 대박을 터트렸다며 요란을 떨어서

알아보니 감자 튀김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오랫만에 맥도널드에 가서 프렌치 프라이를 먹겠다고 나섰다. 

 

모처럼 실버극장에서는 중국 영화와 미국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그 중 미국 영화가 <The Apartment>(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라는 1960년 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도중에 나와도 되겠다 싶어서 들어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험회사 회계과에서 만년 말단 사원으로 일하는 백스터는 출세를 약속하는 상사들 4명을 상대로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주게 된다. 그들이 밀회를 즐기는 장소로 사용하는데, 일정을 조율하는 일이 쉽지만 않지만, 밀고 당기며 그런대로 잘 운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인사부장에게 일을 잘하는 사원으로 추천을 해서 진급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약속한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서 할 일없이 빈둥거리거나, 시간을 맞춰 아파트에 도착해도 불이 켜 있을 때는 밖에서 추위와 싸우며 시간을 죽이고 있어야 한다. 

 

그런에 이런 사정을 알리 없는 옆방의 의사 크루센 내외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불쾌감을 종종 표현하지만, 집 주인 백스터는 마치 자신이 잘못을 한양 사과를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 크루센은 제안을 한다. 당신의 넘치는 정력은 연구 대상이 될 것 같으니 나중에 죽게 되면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해 달라고 한다. 

 

어느 날 인사부장 맥머레이가 백스터를 부른다. 자신도 아파트 열쇠를 빌려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5명의 상사들의 밀회를 위해서 자신의 아파트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백스터는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여성과 사귄적이 있는데, 고무신을 바꿔 신는 바람에 독신으로 살고 있었고,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옛 여친으로부터 선물을 받곤한다. 백스터가 일하는 회사에는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는 프렌 쿠벨릭이란 여성이 있는데, 몇 차례 백스터가 데이트를 제안했지만, 거절을 당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성사되지 못한다. 백스터는 인사부장의 파격적인 기용으로 한 단계 높은 지위로 그리고 인사부장이 고객이 된 후에는 임원으로 승진, 인사부장의 보좌관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 부장 맥머레이가 갑작스럽게 아파트를 쓰겠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우여곡절을 거치며 일정을 조정해서 편의를 봐준다. 그런데 그날은 프렌과 영화를 보려고 어렵게 약속한 날이었다. 프렌은 잠깐 밀회를 나누고 백스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다. 둘 사이의 밀회가 끝난 후 헤어지는 때 둘 사이에 똑 같은 말다툼이 있게 된다. 이혼하고 함께 살겠다는 인사부장의 판에 박은 거짓말이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극장 앞에서 영화가 시작된지 오래도록 기다리던 백스터는 영화관 주위를 서성이는 한 여자에게 다가서가 그 여자 역시 남편에 대해 불만이 많은 여자인 것을 알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인사부장의 데이트가 벌써 끝난 시간이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늙은 여자와 집으로 들어서는데, 자신의 침대에 프렘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옆에는 수면제 병이 놓여 있었다. 자신이 먹다가 남겨둔 12알이 다 없어진 것을 알았다. 흔들어도 깨어나질 않자 옆 집의 의사 크루센을 부른다. 의사는 이런 날이 올줄 알았다며 제발 사람답게 살라고 잔소리를 한다. 위 세척을 하고 주사를 놓고 안정할 때까지 24시간 편히 쉬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그렇게 하던 중 크리스마스가 된다.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프렌을 앞에두고 백스터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게 됐다며 좋아한다. 백스터는 최선을 다해서 프렌을 간호해서 깨어난다. 그러나 프렌은 왜 자신을 죽게 놔 두지 않았느냐며 원망한다. 자신은 인사부장을 좋아했지만, 이혼하겠다는 거짓말로 일관해 온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소망을 잃은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험상궂은 택시 운전사가 백스터의 집으로 들어선다. 인사부장의 비서인 올슨 역시 과거에 인사부장의 연인이었는데, 수도 없이 많은 여비서들을 농락한 것을 잘 알고 있는터에, 인사부장에게서 새해부터는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인사부장 부인에게 그동안의 모든 비행을 알린 것이다. 그 결과 남편의 연인인 엘리베이터 걸 프렌의 집으로 연락을 하고, 마침내 프렌의 제부인 택시 운전수가 백스터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가 백스터에 대한 오해들이 풀리고 이해하게 된다. 마침내 백스터는 자신의 삶을 정리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인사부장을 찾아가서 더 이상 아파트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스스로 퇴직을 선언하고 회사를 떠나온다. 그리고 프렌 역시 참된 사랑을 해야할 상대가 백스터인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치료과정에서 하다 만 트럼프 놀이를 계속하며 영화는 해피 앤딩한다. 

 

이 영화는 평범한 샐러리 맨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상사의 불륜을 도와주는 대가로 승진을 보장받는다는, 그래서 정작 자신의 집을 안식처로 누리지도 못하는 또다른 아픔이 있다. 결국 동변상련이라고 했나? 백스터와 프렌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끼리 새 희망을 꿈꾸어보려는 용기에 박수를 보냈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1961년 아카데미 3관왕을 수상했다고 한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다른 2가지를 보태서 5관왕을 수상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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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전혀 없다. 그저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영화를 택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실버 극장에서 준비한 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원작이 누구인지는 영화를 감상하고 난 다음에 살피는 형국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저 유명한 D. H. 로렌스의 소설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이다. 요약하면, 광산에서 일하는 주정뱅이 아버지, 그런 남편 모렐의 무능한 모습에 실망하면서 아들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쏟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어머니,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서 정숙한 애인 미리암의 보수성에 실망하면서 여성운동가 기질이 있는 유부녀 클라라와 쿨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림에 소질있는 청년 폴, 이렇게 모렐, 모렐부인 그리고 폴 세 사람이 벌이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그외 폴의 두 연인과 형제들이 등장인물이며, 영국고전영화 답게 연극적인 연기와 대사, 잘 쓰여진 시나리오와 주고 받는 대사에 의한 심리표현과 인간관계가 잘 나타난 영화이다.

 

아무래도 나는 목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영화를 감상할 때 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알게 모르게 신앙적인 의미를 살피게 된다. 특히 서구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것이 일상적인 평범한 이야기이든, 아니면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인 문제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신앙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점이 다른 일반 감상자와 차별화된 점이 될지 모르겠다. 

 

모렐 부인은 지금은 몰락했지만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 집안 출신이다. 친정 집안은 청교도적이었다. 그랬던 여인이 광부인 모렐과 결혼했다. 남편 월터 모렐의 잘생긴 용모와 활력 넘치는 건강미에 반했다. 남편은 자신과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점이 좋았다. 하지만 그건 허세뿐이었다. 모렐은 춤과 술을 사랑했다. 책을 읽지 않아 교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말은 천박하고 거칠었다. 신혼 시절 남편의 말과 달리 결혼비용이 빚으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고 탄광에서 힘들게 번 돈을 술값으로 탕진해서 저축은커녕 생활비도 부족해서 쩔쩔매게 만들었다. 게다가 술 마시러 나가기 위해 아내의 지갑에서 돈을 슬쩍하기도 했다. 모렐 부인은 남편이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의무를 다하도록 변모시키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겉돌았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니 아내가 자유까지 속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렐 부인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거두웠다. 대신 장남 윌리엄에게 그 사랑을 모두 쏟았다. 남편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이방인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렐은 쓸쓸했지만 점점 그런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럴수록 모렐 부인의 경멸은 심해졌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깊어졌다.

모렐 부인은 셋째 아들 폴을 출산하였고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끝까지 가정을 지켰다(소설에서는 네명의 아들들).

 

영화는 모렐 부인이 지키고자 했던 아들들(sons)과 아들의 연인 이야기를 담았다. 모렐 부인의 사랑은 남편에게서 큰 아들 윌리엄에게로 옮겨간다. 윌리엄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조합 사무실을 그만두고 노팅엄에서 일자리를 구해 주급 30실링을 받더니 일 년 후에는 런던에서 연봉 120파운드를 받는 일자리를 얻었다. 윌리엄은 모렐 부인의 품을 떠나 런던으로 떠났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던 윌리엄의 관심은 집과 어머니에게서 여자에게로 옮겨갔다. 윌리엄은 자신이 버는 그 많은 돈을 약혼녀를 돌보는데 쓰느라 어머니에게 줄 돈은 없다. 아들이 사랑하는 연인은 경제관념이 없고 책을 읽지 않으며 겉모습만 화려하게 치장한다. 모렐 부인은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윌리엄에게 비쳤다. 조심스럽게 불행한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윌리엄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여자라고 말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녀와 헤어질 결심은 하지 못한다. 셋째 폴은 자신의 꿈인 유명 화가가 되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그린 그림이 유명 화방 주인의 눈에 띄어 런던에서 화가 수업을 받고 유명 화가의 길을 약속했지만, 그는 어머니가 겪는 힘든 삶을 뒤로 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마을 조합 사무실에 일자리를 구한다. 그리고 그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영화에서 둘째 아들이 탄광에서 사고로 죽게 되자 모렐 부인은 극심한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그녀는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고 죽은 아들 생각만 했다. 그런데 폴이 폐렴에 걸리자 살아있는 아들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로 돌아온다. 이제 모렐 부인의 삶은 폴에게 뿌리 내렸다. 무능한 주정뱅이 역할이지만 중요할 때 한마디씩 던지는 대사가 험난한 인생의 관록을 느껴지게 한다. 탄광에서 아들이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아들과 연인, 그리고 어머니 영화 아들과 연인은 에로틱한 애정물 대신에 의미깊은 대사와 연기가 전개되는 고급 시나리오 영화로 완성되었습니다.

 

<아들과 연인>은 신앙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렐 부인의 규범화된 청교도적 신앙이 가족간의 진정한 화해와 조화를 가로 막는장벽이 되고 있고, 셋째 아들 폴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웃 마을 여인 역시 청교도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두 사람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그 반항으로 사회 운동을 하는 유부녀와 두번째 사랑을 하는데, 이번에는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비난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다시 한번 기독교 신앙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하게 하는 영화였다. 청교도 신앙은 극심한 비윤리와 무기력한 세상에 대한 해답으로 시작됐지만,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지 못하고 율법화될 때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폴의 재능과 첫 번째 꿈, 유명한 화가가 되는, 그 꿈이 모렐 부인이 죽어가는 침대에서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침대 끝에 세워둔 꽃 그림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는다. 그 꽃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말한 것들이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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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에 61위에 오른 <셜리반의 여행>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저 유명한 아카데미상 후보에 단 한부문에도 오르지 못한 영화였다니 말이다. 

2차 대전이 한참이던 시절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각설하고 나는 영화의 수준이나 작품의 질을 따져보고 감상하는 편은 아니다.

1960년 대나 1970년 대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신문이나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는 것으로 전부였던 가난한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모범 학생 신분이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둘 중의 하나를 고른다.  영화감상 아니면 도봉산 둘레길 산책이 그것이다.

 

<셜리반의 여행>도 실버 극장에서 보내주는 안내 메일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는 작업은 나같은 목사나 할 일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또 다른 한 사람 제대로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인물을 만났다.

 

헐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코미디 영화 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며 제작진에게 구상한 내용을 얘기한다.

그것은 <오 ! 형제여 어디 있느냐>란 제목의 영화인데,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제작진들은 모두가 반대한다.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섹스 영화나 갱단이 등장하는 미국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큐멘터리 적인 삶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은 직접 그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속으로 체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노숙자들이 묵는 합숙소인데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불 삼아서 추위를 견디는 잠자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당시만 해도 몸에 기생하는 이와 벼룩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가난 체험은 번번히 실패를 맛보게 된다. 

히치하이커로 올라탄 트럭은 엉뚱하게도 가난 체험을 마치고 제작진과 만나기로 한 라스베이거스에 내려놓는가 하면,

도둑 승차한 기차 화물칸을 타고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 여행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나눠주던 5달러 지폐를 노린 한 늙은 노숙자의 강탈과 서글픈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신문에 대서특필하게 된다.

그 늙은 노숙자가 자신의 신발을 훔쳐 신었고 그 신발에는 셜리번 감독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싸움에 말려들어 쉽게 훈방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

6년 노동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강제 노역에 참가하는데 비인격적인 대우를 감수해야 한다. 

발에 족쇄를 차고 노역하는 죄수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저런 싸움을 한다.

그리고 노역장의 감독은 아주 잔인한 사람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죄수를 하루 종일 서 있는 개인 감옥에 넣는다.

마치 삼청교육대를 보는 듯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는 반전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로 이런 죄수들을 위해 한 흑인교회에서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데, 그때 처음으로 신나게 웃는다.

디즈니 만화가 한 순간에 고통에 찌들어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죄수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죄수가 읽던 신문에서 자신의 죽음 기사를 읽고 반전을 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셜리번 감독을 살해한 사람이라고 외치자 그의 모든 행위가 밝혀지고 옛 생활로 돌아온다.

다시 제작진을 만나게 되고, <오 !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라는 작품 대신 코미디 영화를 만들겠노라 선언한다.

영화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영화 <셜리반의 여행>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웃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민낯을 고발하거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어서 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접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어두운 면들에는 너무 복잡하고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음을 눈뜨게 한다. 

어찌하여서 가난한 사람들은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올 수 없는 것일까?

오래 전 교회를 이전하기 까지 30년 동안 내가 일하던 교회를 찾아오던 한 폐병 환자가 있었는데, 

그는 올 때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도움을 청했고, 나는 실험삼아 그를 도왔었다. 

도장 파는 일을 해 보겠다고 했고, 라디오 수리 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막노동 시장에서 미장공으로 일하겠다고도 했고, 조용한 요양소에 머물겠다고도 했다.

물론 그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을 요구했다. 그런데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결심은 강한데 그 결심을 지탱할 의지가 너무 약했다. 그것이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원인이었다.

노숙자가 새벽 기도회 시간에 참여했다. 작은 기도실에는 악취로 가득 찼다.

몇 명 되지 않던 참석교인들이 하나 둘 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깨끗이 세탁한 옷 가지도 주고 목욕할 돈도 주었다. 그러나 며칠 후면 똑 같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고향으로 내려 보낼 계획도 세우고 실행했지만 도레미 탕이 되었다. 

결심도 의지도 약한 사람들이 노숙자인 것을 배웠다. 

 

어쩌면 <셜리반의 여행>을 세상에 내 놓은 감독은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해 주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성경적이 아니건, 비 윤리적이건 그도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기적 이야기건

이런 저런 이상적인 내용 보다는 우선 재미 있는 한 순간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부흥사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쨌든 꿩 잡는 것이 매다는 식으로 예수 믿게 하고 정신 차리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 말이다. 

그 결과는 바로 오늘의 한국 교회를 만들고 말았다. 

예전에 비해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잘 살게 되었지만, 

교회나 신앙생활은 완전 꽝이 되고 말았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수단으로 말이다. 지금도 코미디언을 자처하는 목사들이 인기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슬프고 답답한 현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역할로 끝나고 있다. 

아무튼 <셜리반의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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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허리우드 극장에는 실버 극장과 낭만 극장 둘이 나란히 있다.

근사하게 차려입은 노신사와 노숙녀들은 물론, 노숙자 수준의 노인들도 간혹 눈에 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젊은 날을 회상하기에 딱 좋은 50, 60년대 영화들이 사흘 간격으로 상영되고 있으니 어찌 이를 탓하랴?

 

은퇴후 내 생활의 일부가 된 영화 감상은 내 노년기를 얼마나 충실하게 채워주는지 모른다.

오늘은 1960년 스페인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Un rayo de luz>을 택했다. 

 

50-60년대 스페인에는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하는 두 명의 가수겸 배우인 꼬마 소년 소녀가 있었는데 바로 호셀리토와 마리솔이다. 둘은 어린 나이에도 각각 우렁찬 성량으로 노래와 연기를 하며 인기를 모았다. 그 중 마리솔이 주연한 영화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은 우리나라에 두 번이나 개봉될 정도로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1960년 작품이며 이 영화에서 마리솔은 10살된 소녀로 출연하여 웃고 울리는 연기로 관객을 감동시킨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은 유명한 동화 <소공자>의 소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귀족과 사귄 가난한 여성이 사고로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대신 그의 분신인 아이를 임신하여 혼자 낳아 기르게 되고, 세월이 흘러 타국에 있는 지체높은 귀족인 아이의 할아버지가 아이를 부르게 되고, 아이는 괴팍하고 완고한 할아버지를 만나 손녀딸의 재롱을 보여주며 할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고 다 같이 행복을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영락없이 <소공자> 이야기의 재판이다. 소공자는 미국의 가난한 소년이 영국의 할아버지에게 가는 내용으로 좀 더 먼 거리인데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은 스페인의 어머니로부터 이탈리아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가는 내용으로 약간 더 가까운 거리라는 점이 다르다. 그 대신 마리솔의 경쾌한 노래들이 많이 흘러나오는 것이 영화의 볼거리이다.

 

스페인의 연극배우인 엘레나(마리아 마호르)는 이탈리아 백작의 아들 카를로스(안토니와 몰리노 노조)와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차이로 고민한다. 카를로스는 아버지인 안젤로 백작(훌리오 산주앙) 에게 승낙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타지만, 비행기가 추락하여 전원이 사망한다. 카를로스의 동생 파블로(안셀모 두아르테)는 형의 유품을 받으러 왔다가 엘레나의 존재를 알게 된다. 카를로스의 아이를 임신한 엘레나는 아이를 낳고 마리솔이라 이름을 짓고 혼자 키운다. 10살이 된 마리솔, 3개월간 겨울방학을 앞두고 오랜만에 삼촌 파블로가 찾아와 마리솔을 방학동안 이탈리아에 데려가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안젤로 백작은 스페인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손녀딸과 10년만에 첫 대면을 하게 된다.

 

군인 출신으로 엄격하고 완고한 안젤로 백작, 장남이 사고로 죽은 뒤 그 커다란 저택에는 오래도록 웃음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마리솔이 도착하고, 마리솔은 특유의 낙천적이고 발랄한 모습으로 할아버지 안젤로 백작을 즐겁게 한다. 완고하던 안젤로 백작도 마리솔을 통해 웃음을 되찾고 이웃 어린이들에게도 자상한 할아버지가 된다. 어느덧 마리솔 없이는 살 수 없게 된 백작은 자신의 여생에 마지막 희망이자 기쁨인 마리솔과 평생 함께 하고 싶어서 방학이 끝난 후에도 계속 머무르게 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스페인의 가난한 여성인 며느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마리솔은 엄마를 보고 싶어 하고 그런 마리솔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낀 백작은 별장으로 떠나고 마리솔은 엄마에게 돌아온다. 엘레나는 마리솔을 반가워하지만 집도 없이 지인의 집에 얹혀 사는 자신의 처지때문에 괴로워한다. 마리솔에게 화를 냈지만 내심 너무 보고 싶어하던 백작은 마리솔이 녹음해 놓은 음성편지를 듣고 감동하여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마리솔을 찾으러 간다. 10년의 세월만에 엘렌을 며느리로 받아들인 백작, 파블로는 어느새 엘렌과 사랑에 빠져있었고, 둘은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고 백작의 집에는 다시 웃음이 피어난다.

 

전형적인 아이들용 동화이며, 마리솔의 해맑은 미소와 촉촉한 눈매가 영화를 감동의 분위기로 이끌어 간다. 무엇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하는 마리솔은 재능있는 아역배우로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뻔한 내용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다만 너무 쫓기듯이 빠른 대사가 다소 정신없는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많은 대사, 빠른 진행, 영화적 완성도는 뛰어난 편이 아니지만 내용 자체가 가족용이며 흐믓한 결말을 주고 있어서 아이들용 가족영화로는 추천하기 좋은 작품이다. 재능있는 아역배우들의 전성기 시절 영화들을 많이 보면서 정서적 회복을 할 수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많은 고전영화를 구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희귀한 영화들에 대한 갈증이 끊임없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은 노래하는 아역스타 '마리솔'의 연기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사람을 기운차게 살게 하는가? 라는 물음을 가졌다. 사람의 성격을 쉽게 고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신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 비뚤어졌거나 완고하거나 모난 성격 때문에 인생사를 그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고들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장군 출신의 백작과 사생아처럼 여겨졌다가 비로소 할아버지를 찾게 된 소녀 사이에 벌어지는, 아주 흔한 갈등과 세대차를 무엇이 극복하게 해 주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영화였다. 자신의 명예와 자존감이라는 틀 속에 박혀 살던 백작의 마음을 흔들고 움직인 것은 놀랍게도 사랑이라는 바이러스였다. 물론 비싼 가정교사를 들여 자신의 마음대로 어린 손녀를 가르치고 훈련시켜려고 했지만, 사실 어린 손녀는 너무 영특해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 소녀는 자기 또래의 소작민의 아이들을 불러모아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런 저런 군대 이야기를 토대로 병정 놀이를 한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옛 젊은 시절이 떠올라 흥미를 갖는다. 그리고 병정 놀이에 필요한 장난감 등을 한 차 가득 사들고 들어오는 등 손녀의 삶에 조금씩 동화된다. 그런데 손녀의 기특한 대장 놀이에 한 편이 된 아이들이 스스럼 없이 백작의 문지방을 넘어서 들어오면서 아이들의 옷 매무새며 가난에 익숙해진 얼굴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손녀의 배갯머리 충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백작은 아이들의 부모가 하는 일이며 살아가는 내용을 전해 듣고 월급여를 두 배씩 올려준다. 물론 자기 집 집사며 비서들의 월급도 몇 배로 올려준다. 백작의 마음에 사랑이라는 바이러스가 작용할 때만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리고 자기만을 위한 손녀가 아니라, 손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멀리 떨어져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사랑의 바이러스가 충만할 때 세상은 온통 사랑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백작은 더 이상 옛날의 자기 중심적인 완고하고 독불장군이 아니다.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런데 굳이 흠결을 찾자면, 어린 주인공 마리솔의 정신 연령이 너무 자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성숙한 생각과 노래말은 조금 식상하게 한다. 그 나이를 적절한 순수함과 어린애 다움은 얼마든지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관객들의 눈시울을 촉촉하게 적시기에는 충분한 그런 가족 영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2019년 가을을 붉게 물들이는 11월 1일이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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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낭만적인 오래되고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감상하였다.

내가 7살 때 제작된 영화라고 하니, 그래서 더욱 정겹게 감상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감독 겸 제작자인 존 포드는 미국 서부 영화의 대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서부영화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포드는 아일랜드 혈통을 지닌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고향 아일랜드로 돌아오는 숀 손튼(존 웨인 분)을 자신의 분신처럼 그렸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시종 <The Isle of Innisfree> 라는 ost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 때문에 영화가 나왔는지도 모를 만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숀 손튼은 유명 권투 선수였는데, 시합도중 상대 선수를 죽이게 된다. 그래서 숀은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그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고향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차에서 내려 고향 이니스프리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느냐고 기차 역무원과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는데, 한 마부가 숀의 가방을 들고 나간다. 그를 따라서 역을 빠져나가니까 지붕없는 역마차가 한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이니스프리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는데, 그 마부가 옛 친구 미찰린인 것을 알게 된다. 숀은 자신의 방문 목적이 단순한 고향 방문이 아니라, 옛 집을 사 들여서 그곳에서 살려고 한다고 얘기를 한다. 그 때 미찰린은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 그 소유주가 부자 과부인데 이웃하고 있는 사람에게 팔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옛집의 소유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른 경쟁자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웃에 집과 땅을 가진 윌 다나허라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경매 비슷한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숀은 엄청나게 불러서 그 집을 사들이게 되는데 윌은 그 일로 숀에 대한 감정이 나쁘게 박힌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으로 들어오는 도중 양떼를 치는 한 소녀를 보게 되는데, 한 눈에 반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는 경매의 경쟁자였던 윌의 여동생 메리 케이트(Maureen O'Hara 분)였는데, 매우 거칠고 성급한 성미를 지닌 아일랜드 여인이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물에는 남녀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전형적인 장애물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장애물은 미국 문화에서 살아온 숀이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풍습과 문화에 부딪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숀이 가장 처음 만난 장애물은 메리 케이트의 오빠 윌(Victor McLaglen 분)과의 갈등이다. 미국에서는 당사자들만 좋으면 결혼하는 데 가족의 의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가족의 승락이 없으면 그 결혼은 포기해야만 한다. 숀이 자신의 옛집을 되찾는 과정에서 이미 앙숙이 된 그녀의 오빠가 이를 용납해 줄 리는 없다.

 

두 남녀의 결혼이 실패한 상태로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른다. 보다 못한 마을 성당의 신부(Arthur Shields)와 중매쟁이 등등이 둘의 재결합을 위해 계략을 꾸민다. 역시 미혼이던 메리의 오빠가 마을의 유지인 중년 여인(Mildred Natwick)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 집에 여자가 둘이 있다면 누가 편하게 결혼하려고 하겠느냐? 그러니 여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면 그문제는 해결된다는 계략으로 윌을 현혹시킨 것이다. 계책에 걸려든 메리의 오빠 윌은 둘의 만남을 허락한다. 감시인이 붙었기는 했지만, 숀과 메리는 행복한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감시인의 영특한 말() 덕분(?)에 둘은 그의 눈을 피해 오붓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둘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결정하는 날,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계략은 들통이 나고 메리의 오빠는 광분한다. 엉망이 되긴 했지만, 숀과 메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메리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나름 꿈꾸고 있었는데,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릇이며, 피아노 그리고 화장대를 어디에 두는 등 자신만의 아름다운 실내장식을 하고 싶은데, 그것들을 가져올 수 없다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은 침대에 남편 숀은 침낭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 열받은 오빠 때문에 지참금을 받아오지 못한 메리는 계속 숀에게 그것을 오빠에게서 받아오라고 조른다. 아일랜드에서는 신부의 지참금이 결혼에 절대적인 필수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부모에게서 받은 돈과 자신이 벌어서 모은 350프랑을 반드시 오빠에게서 받아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두 번째 등장하는 장애물이 바로 지참금, 돈이다. 영화는 숀의 암울한 과거를 보여준다. 그는 잘나가는 복싱 선수였는데 시합 도중 상대 선수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글러브를 벗고,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떠나 먼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깟 돈 몇 푼 벌려고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아직 그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아내가 지참금에 목을 매고 있으니 숀의 고민은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숀은 마을 신부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결국 숀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메리 오빠가 퍼붓는 멸시와 조롱이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낀 숀은 드디어 폭발하고, 둘 사이에 아일랜드식(?)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가운데 둘은 끊임없이 주먹을 주고 받는다. 싸우면 정이 든다고 했던가? 싸우다 지친 둘은 술집에 들어가 서로 술을 들이킨 후에 또 나가서 치고 받는다. 그러다 지친 두 사람은 숀과 메리의 집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온다. 오빠와 화해함으로써 모든 갈등은 해결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서 아일랜드에 중매장이가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중매장이가 가운데 끼어서 두 사람의 데이트를 주선해 주고, 여러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백미이다. 한 나라의 국민성을 몇 마디로 정리한다는 게 우습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된 아일랜드인의 특성은 다혈질적이고 남자들은 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메리도 억센 성격의 소유자로 등장하며, 둘을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는 거의 알콜 중독자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면들은 포드 감독의 연출 덕분에 추잡스럽다는 인상보다는 고향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감처럼 다가온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존 포드 감독은 (아직도 전무후무한) 생애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통속적이면서도 꾸밈없는 순수한 시골의 낭만이 묻어나는 수작이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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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원제 : Die Trapp-Familie

1956년 독일영화

감독 : 볼프강 리베나이어

출연 : 루트 로이베릭, 한스 홀트, 조세프 마인라트

아드리네 게스너, 볼프강 바흘


독일영화 '보리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등장했던 '폰 트랍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픽션이 대부분이었던 사운드 오브 뮤직과는 달리 트랍과 마리아에 대한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이야기로 진행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1956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수녀원에 있다가 트랍일가에 가정교사로 가게되어 트랍남작과 결혼하게 된 마리아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원전이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있었기에 불멸의 고전 대작 사운드 오브 뮤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락적 완성도가 최고인 뮤지컬 대작이었던 것에 비하여 보리수는 아담한 소품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이야기가 큰 틀로 보면 비슷하지만 실제 트랍 가족의 상황에 맞게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다른 부분이 더 많습니다. 젊은 견습수녀 마리아(루트 로이베릭)는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원장수녀는 그런 마리아를 잘쯔부르크의 트랍 남작(한스 홀트)의 집에 가정교사로 보내는데 트랍 남작은 아내와 사별하고 7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남작의 집에 도착한 마리아는 퇴역군인 출신의 완고한 트랍 남작이 호각으로 아이들을 다루며 엄격하게 키우는 모습을 보고 이런 집안의 관습을 바꾸기 위해서 과감히 나섭니다.  마리아는 제복만 입고 답답하게 사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입히고 들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고 노래도 가르칩니다.  그런 마리아를 트랍남작은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 마음을 차츰 열게 되고 마리아의 개혁을 받아들입니다.  트랍 남작은 마리아를 사랑하게 되어 청혼을 하고 마리아도 그 사랑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20년이 넘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부부가 됩니다.   


자유분방한 견습수녀 마리아

 

아이들을 호각으로 다루는 트랍 남작

트랍가족들

 


보리수 역시 마리아와 트랍 남작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이 영화의 딱 절반입니다. 이후는 결혼 이후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트랍과 결혼한 마리아는 새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보내는데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합병하게 되면서
트랍이 재산을 저축해둔 은행장 친구가 자살하게 되고 트랍은 파산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먹고살 방법을 강구하기 위하여 저택을 호텔로 꾸며서 돈을 벌려고 하고 호텔에 투숙한 신부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게 합니다.  귀족집안의 아이들이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싫어하는 트랍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콩쿨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하게 되고 미국으로 초청을 받기도 합니다.  나치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자 트랍가족은 미국으로 도피 하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리아를 탈출합니다.  그러나 초청을 약속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이민국 수용소에서 고생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던 트랍가족은 초청을 약속했던 공연기획사 사람들이 마지 못해 나타나게 되자 그 앞에서 '보리수'를 노래하여 인정받게 되고 꿈같은 미국공연을 시작하게 됩니다.

 

원제는 '트랍 패밀리'인데 국내에 보리수로 개봉된 이유는 트랍 가족이 천신만고끝에 미국에 입국할 수 있게 된 것이 '보리수'라는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으로 그 때 불렀던 노래의 제목을 개봉제목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보리수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유명한 가곡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마리아

마리아에게 마음을 여는 트랍 남작

마리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트랍

 

실제 트랍 패밀리의 실화에 어느 정도 충실히 만든 작품이고 그들이 알프스산을 넘어 스위스로 간게 아니라 미국으로 가서 정착했다는 것도 사실에 맞게 만든 내용인데 다만 실제로는 트랍 남작과 마리아가 결혼후 12년뒤에 미국에 정착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과정을 약 1년 정도의 이야기로 단축하고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 10년간의 이야기로 할 경우 아이들역의 배우를 모두 교체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기간을 줄인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새로 아이를 낳은 것도 나오고 트랍의 아이들의 이름도 실제 아이들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 사운드 오브 뮤직과 비교할 때 훨씬 사실에 충실한 부분입니다.  특히 트랍 가족의 음악을 도와준 바스너 신부가 비중있게 등장하고 있고, 트랍 가족이 숙박업을 운영했다는 내용도 실제와 비슷한 부분입니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와 재미는 뮤지컬로 만든 사운드 오브 뮤직이 훨씬 월등하며 원전을 능가하는 리메이크 작으로 몇 편 안되는 영화중 하나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비슷한 장면등을 꼽으면 수녀원에서 시작하는 내용과 트랍 남작이 호각으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부분, 그리고 마리아를 질투하여 쫓아보내려고 한 귀부인이 등장하는 부분등 입니다.  대체적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극적이고 영화적이지 않고 꽤 무던히 흘러가는 소품입니다.   

 


마리아와 트랍 남작의 결혼식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합병하게 되자 외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트랍 가족

'보리수'를 부르는 트랍 가족

 

7명의 아이를 키우는 오스트리아의 귀족 홀아비가 수녀가 될 뻔한 가정교사와 나이와 신분을 초월하여 극적인 사랑을 이루었고,  그들 가족이 독일의 침략을 피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하여 노래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살아간다는 이런 '실화'는 충분히 감동과 흥미를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보리수'라는 영화가 탄생했고,  2년뒤인 1958년 미국에서의 폰 트랍 가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속 보리수'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속 보리수 역시 볼프강 리베나이어 감독, 루트 로이베릭 주연으로 전편의 감독, 배우들이 고스란히 등장하여 속편 역시 우리나라에 개봉이 되었습니다.  이후 트랍 가족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지고 결국 영화로 각색되어 1965년에 만들어진것이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며 이렇게 해서 영화사상 가장 완성도 높고 흥행력이 뛰어난 대 걸작 사운드 오브 뮤직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트랍 가족은 2차 대전당시 미국과 유럽을 돌며 전쟁으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를 들려주며 '사랑의 메신저'역할을 했다고 하고 미국에서 숙박업을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미국에서 계속 정착하며 음악 가족으로 노래를하며 생애를 마쳤다고 하지요.  워낙 사운드 오브 뮤직이 크게 성공하여 우리에게는 트랍 가족 하면 '알프스산'을 넘어서 극적으로 스위스로 탈출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연상되지만, 실제 트랍 가족의 삶을 훨씬 사실적으로 다룬 '보리수'라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원전영화가 9년이나 앞서서 독일에서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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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빈센트 미넬리

출연 :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처드 버튼, 에바 마리 세인트, 찰스 브론슨, 로버트 웨버, 모간 메이슨

 

어느 비평가는 이 영화 <고백>을 이렇게 평하였다. “成人을 위한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무슨 외설적이거나 야한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고, 이 영화에 담겨 있는 '깊은 인생관'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서른 살은 넘어야 가능하다고 느껴집니다. 깊은 사랑을 하고, 세상에 뛰어들어 돈벌이를 하면서 '적당한 타협''적당한 속물'이 되어감을 느낄만한 연륜이 되었을 때 보면, 더욱 깊이와 공감을 느낄만한 영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백>은 재평가를 받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한 소년이 사슴을 잡기 위해서 해변 비탈길을 오르내리다 마침내 사슴을 향해 총으로 쏘는 장면이 나오고, 해변 모래사장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선풍적인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소로우의 자연주의 삶에 영향을 받은 미모의 '비혼모'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로라역으로 출연한다. 로라와 함께 해변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던 소년 대니, 사슴 사냥사건으로 대니는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지게 된다. 어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 수 있어도, 어린 아이는 마땅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의 어머니 로라는 자신의 아이를 자신이 바르게 교육 시킬 수 있다고 거칠게 항의를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결국 아들 대니의 자유분방함은 결국 그를 성공회 신부인 에드워드(리처드 버튼)가 교장으로 있는 기숙학교에서 생활한다. 자연속의 삶의 가치를 주장하는 로라와 엄격한 교육의 가치를 주장하는 에드워드의 의견이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이쯤 이야기하면 <고백>은 문명인과 자연인의 갈등을 다룬 영화처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영화가 중반부로 흐르면서 성직자인 리처드 버튼과 비혼모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랑, '불륜관계'의 이야기로 전개 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남편과 남편의 교육 사업에 헌신한 아내 몰래 미모의 학부모와 바람피는 파렴치한의 이야기도 물론 아니다.

 

<고백>은 굉장히 독특한 철학과 가치기준을 다양하게 내세우고 제시하는 작품이다. '신부'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차차 속물이 되어가는 에드워드와 그의 아내 클레어(에바 마리 세인트)로 비춰지지만,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에드워드가 비로소 삶의 진정한 가치와 성직자로서 임무를 시작할 때의 순수함과 열정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그가 로라와 바람을 피우게 되면서 이다. 참 아이러니한 전개이다. 모범가장이 '바람'을 피우며 '불륜남'이 되면서, 비로소 속물인생을 반성하고 참다운 성직자가 된다니 말이다.

 

그러므로 <고백>은 어떤 모범 답안을 제시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강제로 학교에 넣어지고 엄마와 이별했던 소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학교에 적응할 뿐 아니라, 스스로 더 학교생활을 하고 싶어 하고, 친구들도 사귀고, 바람직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잘 알고 있던 로라가 유부남 성직자와 사랑에 빠지면서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정답보다는 다양한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가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이해하고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들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과 철학이 압축되어 담겨있는 영화로 완성되어 간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그 당시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진부하고 느린 멜러물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삶의 연륜이 쌓인 성인(成人)이라면 오히려 진실한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소재의 영화이니 만큼, 참으로 좋은 명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 중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리처드 버튼의 후반부 연설부분에 나온 대사이다. "세상에 적응한다는 것은 세상에 부적응하는 것만큼의 죄악이다" 적당한 타협과 적당한 속물이 되어야 이 험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현실아래서 너무나 공감되는 대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 간의 불륜과 간통이라는 '인간사회'에서 임의로 만들어 놓은 굴레,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자유롭게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울타리와 구속적 굴레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명대사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는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처럼, 의사와 환자의 관계처럼, 성직자와 고해자의 관계처럼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도요새/sandpiper가 주인공 두 사람을 엮어주는 스토리의 소재가 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에드워드가 가정방문을 위해 해변의 낡은 대니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로라가 날개를 다친 도요새 한 마리를 치료해 주고 있다. 최면을 걸어 눞혀두고 약을 바른 후 작은 나무 가지로 날개에 부목을 대 준다. 그리고 건강해질 때까지 돌보다가 회복되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현관 문을 열어둔다. 그런데 건강해진 도요새가 종종 그림 그리는 곳으로 찾아와서 로라의 어깨위에 올라가서 놀다간다. 스토리는 남녀 주인공은 물론 소년 대니 그리고 도요새까지 자연스러운 것이 모든 삶의 정답이라고 암시해 주는 것 같다.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출연 당시 실제 부부였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면들이 많다. 그래서 통속적인 잣대로 비난부터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내 주변에도 자신의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몇 차례 다녀왔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라고 혹평하지를 않나, <겨울 연가>의 주인공 욘사마의 촬영 현장인 가평을 찾아서 양양 공항으로 전세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일본 중년 부인들을 제정신이 아닌 여자들이 아니냐고 하질 않나, 하는 목사도 있었다. 속이 좁아 터져도 한참 좁은 그런 사고로 어떻게 목사직을 수행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목사들에 비하면 차라리 무신론자들에게서 훨씬 더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프리드리히 니체나, 알베르 까뮈 그리고 조지 버나드 쇼우는 무신론자들이지만, 그들이 오히려 반면교사가 되어 더 깊은 신앙의 길잡이 역할을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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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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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작인 <고뇌와 열정>은 원 제목으로 하면, <고뇌와 환희>가 더 맞지만, 영화 내용을 보면 <고뇌와 열정>이 맞는 것 같다. 

 

어제 모처럼 교단 행사에서 설교를 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몸이 무겁고 목 둘레가 뻐근했지만 실버 극장으로 향했다. 

오늘 감상한 영화는 <고뇌와 열정>이었. 예고편처럼 이탈리아와 로마 플로렌스 피렌체 등을 찾아가며 조각품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한참 진행되었다. 가령 미켈란젤로의 최고의 걸작인 <다윗 상>을 비롯해서 큰 돌덩어리를 보고서 그 속에 모세가 숨을 쉬고 있다는 등, 조각가의 혼이 소개되는데 앞으로 조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여러 곳에 있는 성모상(피에타 상)을 비교해 가며 설명하는 것은 그림이나 조각에 문외한이 내게는 큰 자극을 주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시스티나 성당을 짖고 벽화는 끝났지만 텅빈 천장에 천장화를 미켈란젤로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그는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며 거절하지만 교황은 억지로 권한다. 결국 교황과 계약을 맺고 천장화에 착수한다. 이른바 프레스코화법의 그림인데, 프레스코란 이탈리아어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많이 그려진 벽화를 일컫는다. 방금 회()를 칠한 위에 건조가 채 되지 않은 덜 마른 벽면에 수용성 그림물감으로 채화(彩畵)하는 기법이다. 그림물감의 종류는 토질(土質광물질의 것으로 색수는 적다. 그림물감은 벽에 흡수되어, 벽이 마를 때 표면에 고착하므로 빛깔은 변색되지 않고 내구력이 있다. 다만 말라감에 따라 광택을 잃고 발색이 둔화되는데 거기에 프레스코 특유의 차분한 색조(色調)를 볼 수 있다.

 

영화는 화가의 고뇌하는 심리 현상을 보여준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데다가 그 넓은 천장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한다. 그러다 고생해서 그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긁어내기도 하고 물감을 쏟아 부어 폐기하기도 한다. 마침내 채석장 카라라로 도망가기도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영감을 받는다. 하늘의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와중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서로의 손가락이 마주 닿을 듯 내미는 그 유명한 장면이다. 한편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끝까지 찾아내서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교황과 화가는 서로의 약점을 잘 이용해서 정치와 그림을 지속시키는 대화와, 그림을 매개로 성경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별미로 작용하고 있었다. 교황이 스페인의 원정군이 늦게 도착함으로 프랑스와 영국 군에 쫓기는 와중에 교황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어린이 찬양대들이 임종 찬송을 부른다. 그 엄중한 자리에 미켈란젤로는 자신은 더 이상 천장화를 그리지 않겠노라고 허락을 받으러 왔다며 속을 지른다. 교황은 제대로 교황권을 지키라고 한 마디 하고 떠나간다. 그가 교황의 침실을 떠나기 전에 교황은 벌떡 일어난다. 죽어가는 교황을 일으켜 세운 것은 화가였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화가가 진척이 없이 허송세월하는 것을 본 교황은 또 다른 화가 라파엘로를 등장시켜 경쟁구도를 만들면서, 미켈란젤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등이다.

 

이 영화의 결정적인 백미는 미켈란젤로가 노인으로 묘사한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따뜻하고 건장한 청년으로 묘사한 아담에 대해서 교황의 질문과 화가의 대답이 어린 소년들과 같다. 교황은 무서운 하나님으로, 화가는 인자한 하나님으로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데, 그런 차이는 서로의 현실 경험과 심리 상태를 잘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에서 화가는 성경 천지창조의 하나님과 창조된 인간을 생각했다고 하며, 교황의 살벌한 심리 세계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면서 교황은 자신보다 화가의 신앙이 훨씬 더 올바른 것 같다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그림을 보고 싶어서 몰래 성당을 찾아와 숨어서 지켜보는 교황과, 높은 천장에서 내려다 보며 눈을 마주치는 화가의 눈길이 익살스럽게 묘사되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나눈 말, “언제나 마칠 것 같으냐?” “제가 끝내는 날입니다.” 이 말은 나라의 운명이 엄중한 시간에도 둘 사이에 입술로만 나누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다.

 

교황역에 렉스 해리슨이 미켈란젤로에 찰턴 헤스턴이 열연을 한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명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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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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