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전혀 없다. 그저 소설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영화를 택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실버 극장에서 준비한 대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원작이 누구인지는 영화를 감상하고 난 다음에 살피는 형국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저 유명한 D. H. 로렌스의 소설 <아들과 연인/Sons and Lovers>이다. 요약하면, 광산에서 일하는 주정뱅이 아버지, 그런 남편 모렐의 무능한 모습에 실망하면서 아들에게 온 정성과 사랑을 쏟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어머니,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서 정숙한 애인 미리암의 보수성에 실망하면서 여성운동가 기질이 있는 유부녀 클라라와 쿨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그림에 소질있는 청년 폴, 이렇게 모렐, 모렐부인 그리고 폴 세 사람이 벌이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그외 폴의 두 연인과 형제들이 등장인물이며, 영국고전영화 답게 연극적인 연기와 대사, 잘 쓰여진 시나리오와 주고 받는 대사에 의한 심리표현과 인간관계가 잘 나타난 영화이다.

 

아무래도 나는 목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영화를 감상할 때 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알게 모르게 신앙적인 의미를 살피게 된다. 특히 서구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것이 일상적인 평범한 이야기이든, 아니면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인 문제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신앙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점이 다른 일반 감상자와 차별화된 점이 될지 모르겠다. 

 

모렐 부인은 지금은 몰락했지만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 집안 출신이다. 친정 집안은 청교도적이었다. 그랬던 여인이 광부인 모렐과 결혼했다. 남편 월터 모렐의 잘생긴 용모와 활력 넘치는 건강미에 반했다. 남편은 자신과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점이 좋았다. 하지만 그건 허세뿐이었다. 모렐은 춤과 술을 사랑했다. 책을 읽지 않아 교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말은 천박하고 거칠었다. 신혼 시절 남편의 말과 달리 결혼비용이 빚으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고 탄광에서 힘들게 번 돈을 술값으로 탕진해서 저축은커녕 생활비도 부족해서 쩔쩔매게 만들었다. 게다가 술 마시러 나가기 위해 아내의 지갑에서 돈을 슬쩍하기도 했다. 모렐 부인은 남편이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의무를 다하도록 변모시키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겉돌았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니 아내가 자유까지 속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모렐 부인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거두웠다. 대신 장남 윌리엄에게 그 사랑을 모두 쏟았다. 남편은 가족들에게 자신이 이방인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렐은 쓸쓸했지만 점점 그런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럴수록 모렐 부인의 경멸은 심해졌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깊어졌다.

모렐 부인은 셋째 아들 폴을 출산하였고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끝까지 가정을 지켰다(소설에서는 네명의 아들들).

 

영화는 모렐 부인이 지키고자 했던 아들들(sons)과 아들의 연인 이야기를 담았다. 모렐 부인의 사랑은 남편에게서 큰 아들 윌리엄에게로 옮겨간다. 윌리엄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조합 사무실을 그만두고 노팅엄에서 일자리를 구해 주급 30실링을 받더니 일 년 후에는 런던에서 연봉 120파운드를 받는 일자리를 얻었다. 윌리엄은 모렐 부인의 품을 떠나 런던으로 떠났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던 윌리엄의 관심은 집과 어머니에게서 여자에게로 옮겨갔다. 윌리엄은 자신이 버는 그 많은 돈을 약혼녀를 돌보는데 쓰느라 어머니에게 줄 돈은 없다. 아들이 사랑하는 연인은 경제관념이 없고 책을 읽지 않으며 겉모습만 화려하게 치장한다. 모렐 부인은 아들과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윌리엄에게 비쳤다. 조심스럽게 불행한 결혼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윌리엄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여자라고 말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녀와 헤어질 결심은 하지 못한다. 셋째 폴은 자신의 꿈인 유명 화가가 되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그린 그림이 유명 화방 주인의 눈에 띄어 런던에서 화가 수업을 받고 유명 화가의 길을 약속했지만, 그는 어머니가 겪는 힘든 삶을 뒤로 할 수 없어서 포기하고 마을 조합 사무실에 일자리를 구한다. 그리고 그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영화에서 둘째 아들이 탄광에서 사고로 죽게 되자 모렐 부인은 극심한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그녀는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고 죽은 아들 생각만 했다. 그런데 폴이 폐렴에 걸리자 살아있는 아들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에 어머니로 돌아온다. 이제 모렐 부인의 삶은 폴에게 뿌리 내렸다. 무능한 주정뱅이 역할이지만 중요할 때 한마디씩 던지는 대사가 험난한 인생의 관록을 느껴지게 한다. 탄광에서 아들이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아들과 연인, 그리고 어머니 영화 아들과 연인은 에로틱한 애정물 대신에 의미깊은 대사와 연기가 전개되는 고급 시나리오 영화로 완성되었습니다.

 

<아들과 연인>은 신앙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모렐 부인의 규범화된 청교도적 신앙이 가족간의 진정한 화해와 조화를 가로 막는장벽이 되고 있고, 셋째 아들 폴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웃 마을 여인 역시 청교도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두 사람을 주저하게 만들었고, 그 반항으로 사회 운동을 하는 유부녀와 두번째 사랑을 하는데, 이번에는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비난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다시 한번 기독교 신앙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하게 하는 영화였다. 청교도 신앙은 극심한 비윤리와 무기력한 세상에 대한 해답으로 시작됐지만,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지 못하고 율법화될 때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폴의 재능과 첫 번째 꿈, 유명한 화가가 되는, 그 꿈이 모렐 부인이 죽어가는 침대에서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침대 끝에 세워둔 꽃 그림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는다. 그 꽃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말한 것들이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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