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낭만적인 오래되고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감상하였다.
내가 7살 때 제작된 영화라고 하니, 그래서 더욱 정겹게 감상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감독 겸 제작자인 존 포드는 미국 서부 영화의 대부라고 할 정도로 많은 서부영화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포드는 아일랜드 혈통을 지닌 감독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고향 아일랜드로 돌아오는 숀 손튼(존 웨인 분)을 자신의 분신처럼 그렸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시종 <The Isle of Innisfree> 라는 ost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 때문에 영화가 나왔는지도 모를 만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숀 손튼은 유명 권투 선수였는데, 시합도중 상대 선수를 죽이게 된다. 그래서 숀은 글러브를 벗어던지고 그 악몽에서 벗어나려고 고향을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차에서 내려 고향 이니스프리를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느냐고 기차 역무원과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는데, 한 마부가 숀의 가방을 들고 나간다. 그를 따라서 역을 빠져나가니까 지붕없는 역마차가 한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이니스프리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는데, 그 마부가 옛 친구 미찰린인 것을 알게 된다. 숀은 자신의 방문 목적이 단순한 고향 방문이 아니라, 옛 집을 사 들여서 그곳에서 살려고 한다고 얘기를 한다. 그 때 미찰린은 어려울 것이라며, 현재 그 소유주가 부자 과부인데 이웃하고 있는 사람에게 팔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옛집의 소유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른 경쟁자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웃에 집과 땅을 가진 윌 다나허라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경매 비슷한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숀은 엄청나게 불러서 그 집을 사들이게 되는데 윌은 그 일로 숀에 대한 감정이 나쁘게 박힌다.
그런데 문제는 고향으로 들어오는 도중 양떼를 치는 한 소녀를 보게 되는데, 한 눈에 반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는 경매의 경쟁자였던 윌의 여동생 메리 케이트(Maureen O'Hara 분)였는데, 매우 거칠고 성급한 성미를 지닌 아일랜드 여인이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물에는 남녀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전형적인 장애물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장애물은 미국 문화에서 살아온 숀이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풍습과 문화에 부딪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숀이 가장 처음 만난 장애물은 메리 케이트의 오빠 윌(Victor McLaglen 분)과의 갈등이다. 미국에서는 당사자들만 좋으면 결혼하는 데 가족의 의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가족의 승락이 없으면 그 결혼은 포기해야만 한다. 숀이 자신의 옛집을 되찾는 과정에서 이미 앙숙이 된 그녀의 오빠가 이를 용납해 줄 리는 없다.
두 남녀의 결혼이 실패한 상태로 얼마 간의 세월이 흐른다. 보다 못한 마을 성당의 신부(Arthur Shields)와 중매쟁이 등등이 둘의 재결합을 위해 계략을 꾸민다. 역시 미혼이던 메리의 오빠가 마을의 유지인 중년 여인(Mildred Natwick)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이다. 한 집에 여자가 둘이 있다면 누가 편하게 결혼하려고 하겠느냐? 그러니 여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면 그문제는 해결된다는 계략으로 윌을 현혹시킨 것이다. 계책에 걸려든 메리의 오빠 윌은 둘의 만남을 허락한다. 감시인이 붙었기는 했지만, 숀과 메리는 행복한 데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감시인의 영특한 말(馬) 덕분(?)에 둘은 그의 눈을 피해 오붓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둘이 공식적으로 결혼을 결정하는 날,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계략은 들통이 나고 메리의 오빠는 광분한다. 엉망이 되긴 했지만, 숀과 메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메리는 자신의 결혼생활을 나름 꿈꾸고 있었는데, 자신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그릇이며, 피아노 그리고 화장대를 어디에 두는 등 자신만의 아름다운 실내장식을 하고 싶은데, 그것들을 가져올 수 없다면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은 침대에 남편 숀은 침낭에서 생활을 한다. 그리고 열받은 오빠 때문에 지참금을 받아오지 못한 메리는 계속 숀에게 그것을 오빠에게서 받아오라고 조른다. 아일랜드에서는 신부의 지참금이 결혼에 절대적인 필수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부모에게서 받은 돈과 자신이 벌어서 모은 350프랑을 반드시 오빠에게서 받아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두 번째 등장하는 장애물이 바로 지참금, 돈이다. 영화는 숀의 암울한 과거를 보여준다. 그는 잘나가는 복싱 선수였는데 시합 도중 상대 선수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글러브를 벗고,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떠나 먼 고향 땅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깟 돈 몇 푼 벌려고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아직 그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 아내가 지참금에 목을 매고 있으니 숀의 고민은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숀은 마을 신부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결국 숀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메리 오빠가 퍼붓는 멸시와 조롱이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낀 숀은 드디어 폭발하고, 둘 사이에 아일랜드식(?) 주먹다짐이 벌어진다.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가운데 둘은 끊임없이 주먹을 주고 받는다. 싸우면 정이 든다고 했던가? 싸우다 지친 둘은 술집에 들어가 서로 술을 들이킨 후에 또 나가서 치고 받는다. 그러다 지친 두 사람은 숀과 메리의 집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온다. 오빠와 화해함으로써 모든 갈등은 해결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서 아일랜드에 중매장이가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중매장이가 가운데 끼어서 두 사람의 데이트를 주선해 주고, 여러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도록 하는 것도 백미이다. 한 나라의 국민성을 몇 마디로 정리한다는 게 우습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된 아일랜드인의 특성은 다혈질적이고 남자들은 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여주인공 메리도 억센 성격의 소유자로 등장하며, 둘을 연결해 주는 중매쟁이는 거의 알콜 중독자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면들은 포드 감독의 연출 덕분에 추잡스럽다는 인상보다는 고향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감처럼 다가온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존 포드 감독은 (아직도 전무후무한) 생애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통속적이면서도 꾸밈없는 순수한 시골의 낭만이 묻어나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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