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04(2020. 1. 2. 목요일).

시편 58:9-11.

찬송 2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스며드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올해 일흔 아홉, 60년 가까이 시를 써온 황동규 시인. 아마 젊은 시절 들고 다니며 보고 또 봐서 누렇게 바랜 그의 시집을 갖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지요. 고등학교 때까진 작곡과를 꿈꾸었는데, 결국 음악과 가장 가까운 시를 선택했다는 시인. 예술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 주는 것이기에, 가르치는 것과 예술을 하는 게 서로 싸울 수밖에 없어서, 시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그의 시집들을 마주합니다. 표지가 누렇게 바랜 시집 가운데, [삼남에 내리는 눈]을 펼치면, “그는 사랑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종말을 사랑하고, 그 사랑들의 무모함을 다시 사랑한다.” 라는 글귀가 포함된 해설과 함께,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노래> <더 조그만 사랑노래> 시 제목들이 주욱 보입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다/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에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그의 연시 <즐거운 편지>지요. 한국인이 즐겨 애송하는 시이기도 한데요. 시인이 고등학생일 때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대생을 생각하며 쓴 거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각박하고 힘든 시대에도 끊이지 않았던 사랑이야기. 험난한 세상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이자 쉴 곳이 되기도 하는데요. 사랑을 또 삶과 죽음을, 인고의 속내를 보여주는 그의 시 또한, 그의 또 다른 시구처럼 남몰래 넉넉히 거닐고 거니는 안식처가 되어 줍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14일 방송>

 

2.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1-14)”을 읽었습니다. 어제는 저의 모친 22주기 추도예배를 7남매가 모여서 드렸습니다. 순서는 추모 예배를 드린 후, 가정별 보고회를 포함한 가족회의, 선물 교환을 갖고 식사를 나눈 후 헤어집니다. 가끔은 가정별 찬양대회도 엽니다. 저는 가족 앞에서 금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하자고 선언했습니다.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말씀은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5천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기적을 목격한 배고픈 사람들의 기쁨을 얘기하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분임을 확인하는 말씀입니까? 그도 아니면 로마의 통치에 반대하는 유대인의 왕국을 다스릴 왕에 대한 기대나, 자신의 식사 전부를 바친 한 어린 아이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일까요? 무엇 때문에 이런 기적이야기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앞서 가정한 내용들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의 초점을 향해 눈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 모였습니다. 때는 과월절(혹은 유월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라 했습니다. 모인 군중들은 실제적으로 배고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희망의 말씀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삶의 풍요로움일 수도 있고,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평화일 수도 있으며, 건강하고 따뜻한 관계의 회복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매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압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가르침을 기대했다고 말입니다. 그런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모든 지엽적인 말씀들은 조연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배고픈 삶이었지만, 비록 병든 육신이었지만,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예수님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휘어감을 수 있는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였다고 말입니다. 이제 우리도 더 이상 표피적(表皮的)인 욕망을 채우려고 교회를 찾거나 말씀을 들으려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삶을 강하게 붙잡는 생명의 말씀을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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