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06호(2020. 1. 4. 토요일).
시편 59:4-5.
찬송 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스며드는 따뜻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뼈를 전혀 다치지 않게 소를 잡는 사람에게 임금이 방법을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칼날을 한 번도 갈지 않았는데 하늘의 이치에 의지에 큰 틈새에 칼을 넣고 빈 곳을 따라 소의 몸 구조대로 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덧붙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땐 겉모습만 보였는데, 3년이 지나니 부위별로 보이게 됐고, 10년이 지나고 부터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소를 보게 됐습니다. 평범한 백정이 매달 칼을 바꾸는 건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이지요. 제 칼은 19년 동안 수 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뼈와 살 사이 틈새를 지나가니 칼날이 늘 방금 숫돌에 간 것 과 같습니다.” 신기에 가까운 솜씨나 기술을 갖고 있음을 비유하는 고사 성어 “포정해우”에 얽힌 사연으로 장자의 내편 양생주 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처음에는 겉모습만 보이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부위별로 볼 줄 알게 되고, 오랜 세월 일하면서 눈으로 소를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소의 살과 뼈 근육의 틈새를 본다는 포정의 말은, 정진하고 깨우치고 처절하고 치열하게 내면을 다스리면서 집중하면,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스스로 자유로워진다는 건 자유자재로 자신의 일을 해 내는 신의 경지와도 통하는 걸 텐데요. 포정이 다시 말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소도 몸 구조가 똑 같은 소는 없습니다. 하물며 죽은 소도 각각의 생김새대로 다뤄야 하는데, 살아있는 존재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년 1월 23일 방송>
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을 고치신 예수(1-12절)”을 읽었습니다.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그 원인을 분석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타인의 출생을 두고 시비를 벌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가령 키가 크다느니 작다느니, 눈이 둥글다거나 찢어졌다거나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문제의 주인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우리를 아연실색케 합니다. 한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면서 그가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은 자신의 죗값인지 부모의 죗값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주님의 대답은 명확했습니다. 출생의 유불리는 누구의 죗값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출생은 그 처지와 문제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드러낼 위대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곤 주님은 그 장애인에게 침으로 흙을 개어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을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장애인은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평생 거지 노릇을 해 왔던 이 시각장애인은 눈을 뜨자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 거지냐 아니냐로 말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눈으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는 때문입니다. 장애인은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예수라는 분이 행한 일을 소상히 밝히며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일생일대로 간절히 풀어보고 싶었던 문제, 눈을 뜨는 일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 분의 말씀을 따른 일이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 그리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지금 우리들 역시 어려운 문제가 아닌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일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저의 묵상 식구 중의 한 분은 지난 일 년을 회상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말씀 안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고 잘 헤쳐 나왔다고 감사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꼭 어려울 때만이 아닙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길 어디에서든지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명의 떡을 먹고 감격하는 예배. / 요 6:30-33, 48-51. (2) | 2020.01.07 |
---|---|
안식일의 제정정신을 깊이 생각해 볼 것. / 마 12:14-21. (0) | 2020.01.06 |
두려운 우리들 삶의 한 복판에 함께 계신 주님. / 요 6:15-27. (0) | 2020.01.03 |
우리들 삶을 송두리째 붙잡는 말씀을 갈망하기를. / 요 6:1-14. (0) | 2020.01.02 |
예수님의 명명일(命名日)에 우리들 이름을 생각해봄. / 마 1:18-25. (0) | 2020.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