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86(2020. 3. 24. 화요일).

시편 73:1-3.

찬송 49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영화 <아티스트>를 봤습니다. <아티스트>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섯 개의 상을 휩쓴 작품이지요. 1920년대 절정기를 맞던 무성영화 최고 인기배우가, 유성영화에 어떻게 밀려나는지를 그린 영화입니다. 음악을 제외하면, 배우들의 대사나 다른 소리들이 일체 없는, 21세기에 재현된 무성영화입니다. 말과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로써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말이 소리로 전달되지 않는 묵음의 세계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이란 한 두 구절의 메시지 글이나 표정,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말을 소리를 참으로 잡다하고 시끄럽게 낭비해 왔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유성영화가 도입될 무렵 주인공인 무성영화 배우가 탁자에 유리컵을 놓다가 그 소리에 충격 받는 모습은, 기존의 생각과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 기존의 것을 고집하고 지키려는 자존심과, 새로운 변화에 자신을 맞추어나가는 적응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루이지 루솔로는 화가였지만, 음악 전문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특히 세상의 그 어떤 소리와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당시로써는 너무도 충격적인 <아츠 오브 노이즈/ Arts of Noise> 이론을 주장했었지요. 그의 작품 <폭격의 느낌>은 전쟁 중의 폭격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의식이나 생각에 가해지는 큰 충격을 연상하게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야말로 폭격의 느낌일 정도로 충격적인 새로움은 무엇이었는지. 휴대전화의 등장이었는지, 아니면 어느 순간을 계기로 완전히 달라진 나 자신이었는지. 일상을 완전히 뒤 흔든 새로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322일 방송>b.

 

2.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2-16)”주님의 성찬(17-3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단락입니다. 사도는 예배를 드릴 때 남자는 머리를 드러내고 예배를 드리지만, 여자는 수건으로 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지금도 이런 전통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오랫동안 해석을 구구하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람의 머리란 그의 영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에 마땅히 드러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는 그의 남편이기에 마땅히 머리를 가리라고 말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는 것은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여서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머리에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린다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여자는 정반대로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으면 그 남편을 욕되게 한다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의 순서까지 들먹이면서 말씀하지만 설득력이 빈약합니다. 다만, 이런 전통을 그리스도에게 배운 것이라는 점입니다(1-2).

   우리 기독교회는 성경과 함께 전통이라는 유산이 있습니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고 다른 말씀들의 도움을 받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 전해내려오는 관습이 굳어진 것이어서 그런지, 우리와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면 낯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구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양성 평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말부터 기분을 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여자의 영광이라고 까지 치켜 세우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할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기사는 남존여비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데, 100년 전도 아니고 3천 년 전의 삶의 자리를 이해한다면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다면 유대교는 물론 기독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이해가 되는 전통과 함께 이해되지 않는 전통도 전해져 왔다는 것을 시인하자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현대적으로 사람구실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가리고 싶은 것이 여자들의 솔직한 마음이 아닐까? 이를 2천년 전의 사람들이 미리 내다본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 봅니다.

 

3. 제가 하루에 두 차례 내려가 청소하는 쓰레기 장 옆에는 검정 개 한 마리가 우리에 갇혀 있는데, 간식으로 빵이나 고구마를 한 두 개 넣어 줍니다. 저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에 쓰레기장으로 가는 발검음이 늘 가볍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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