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36호(2020. 5. 13. 수요일).
시편 79:10-11.
찬송 40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시대는 바뀌고 주위 환경도 어지럽게 변하는데,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때는 행운을 만나도, 어떤 때는 비운에 울게 됩니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용어를 낳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상적인 군주가 아닌 현실적인 군주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서 정치는 도덕의 위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황청이 금서로 지정했고, 오랫동안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을 뜻했는데요. 그가 1513년에 이 책을 쓰고 있을 당시, 이탈리아는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처럼 뿔뿔이 흩어져 서로 전쟁에 전쟁을 거듭했던 극도의 혼란기였습니다. 급기야 프랑스의 침공을 받기에 이르는데요. 이런 총체적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군주의 출현이 간절했고, 그런 바람으로 쓴 책이었지만, 어느 군주 하나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비웃음만 샀습니다. [군주론]에서 듣기에 껄끄럽고 해석이 분분한 구절은 이 구절입니다.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이 시대에도 들어내 놓고 주장하기에는 파격적이지요. 원칙이 없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 담긴 진의는 이렇습니다. 시대는 바뀌고 주위 환경도 어지럽게 변하는데,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떤 때는 행운을 만나도 어떤 때는 비운에 울게 됩니다. 다만 대 현자가 있어서 시대가 변하는 걸 재빨리 깨닫고 그것으로 여러 정황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내다보아 스스로를 그것에 대응시킬 수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언제나 행운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은 사람들이 왜 운 타령을 많이 하는 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하는 걸 재빨리 깨달아 여러 정황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내다보고, 대응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대현자가 현실에 없어서, 그리고 스스로 그럴 능력이 없어 서지요. 시오노 나나미는 [나의 친구 마키에 벨리]에서, 그 말을 신랄하게 풀어냅니다. “그러나 그런 대 현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언제나 가까운데 있는 것 밖에 보지 못하고, 그 결과 운에 좌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껄끄럽기는 해도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반어법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5년 8월 26일 방송>
2.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1-19절)”을 읽었습니다. 손에 쥐어 주어야 알게 되고, 쓴맛을 보아야 깨달음을 얻는다면, 이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 속할 것입니다. 까닭은 수도 없이 가르침을 받고 크고 작은 채찍을 맞았음에도 깨닫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배움이 짧은 사람보다는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사실을 더 잘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뇌물을 먹고 권력과 명예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국방부 군수처에서 평생을 직장 생활했으면서도, 월급으로 감사하고 뇌물을 먹지 않아 청백리상을 받고 퇴직한 자랑스러운 친구가 있는데, 엊그제 만났을 때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자신에게 미국에 유학까지 시켜준 조국에 대해서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 직장이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졸업한 고교 강당 뒤편에 붙어 있는 직업 선택 10계 중 하나인 “월급으로 만족하라.”는 계명을 실천한 것입니다. 부정을 저지를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그런 삶이 거룩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거룩한 삶의 내용으로 소개된 것을 보면, 부모를 잘 섬기는 것, 안식일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수확할 때 이삭을 남겨두어 빈자와 외국인을 배려하는 것, 남의 물건을 훔치지도 사기 치지도 말 것, 품값을 아침까지 미루지 말 것, 공정하게 재판할 것, 거짓된 말로 형제를 죽음에 이르게 말 것, 형제를 미워하지 말 것, 이웃을 잘못을 타일러 줄 것, 원수를 갚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우리 시대에는 너무 흔해빠진 죄악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요약하면 제구실을 하면서 살아가는 일입니다. 가족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으로 제구실을 하면서 사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평범한 모습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죄가 들어온 까닭입니다. 죄라는 말은 목표를 빗나간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제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부모 노릇, 남편 노릇, 시민 노릇, 이웃 노릇, 모두 피할 수 없는 제구실입니다. 물론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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