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49호(2020. 5. 26. 화요일).
시편 82:6-8.
찬송 25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83년 한 청년이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지상에는 수많은 기자와 구경꾼들이 맨 손으로 건물을 오르는 그를 가슴 졸이면서 지켜봤지요. 청년은 서두르지 않고 그러나 쉼 없이 한 발 한 발 천천히 위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가끔씩 그가 미끄러질 때마다 군중들은 놀라움과 두려움 섞인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멈춰 쉰 뒤,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군중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나중엔 한 개의 작은 점으로 보일 만큼 높이 올라갔습니다. 마침내 맨손으로 벽을 타는 방식으로 그 높은 빌딩을 정복하고,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한 그는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얻었지요. 그러자 미국의 고소공포증 치료 연합회는 그에게 치료회의 심리 고문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는데요. 8만여 명의 고소공포증 환자들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어떤 이는 의자위에서 형광등을 바꾸는 일조차 할 수 없다고 호소하며, 단체의 고문을 맡아달라고 하는 초청장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버스 램은 공포증 치료 연합회 회장 로만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042번 회원의 개인 정보를 찾아보십시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던 회장이 찾아보니 1042번 회원은 바로 버스 햄이었습니다. 고소공포증 환자들의 우상이 된 그 역시 과거엔 매우 심각한 고소공포증 환자였던 거지요. 1층 베란다에만 서기만 해도 부들부들 떨던 사람이 400m가 넘는 초고층 빌딩을 오르다니, 고소공포증 환자들에게는 풀고 싶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기에, 로만슨 회장은 그의 성공 비결을 들으려고 그의 집까지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고소공포증을 이겨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처음부터 높은 빌딩을 끝까지 오르겠다고 결심하면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 걸음씩만 가자 이렇게 생각하는 덴,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지요. 그저 한걸음씩 계속 내딛다보면 그게 이어져 최고지점까지 갈수 있습니다. 저는 그저 한걸음씩 오르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한걸음 내딛고 나면 그 다음 걸음만 생각했지요. 그 결과 기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산적해 있는 어떤 일을 바라볼 때 한숨이 절로 나오지요. 하지만 일단 한가지씩만 해결하자. 이렇게 한 장씩 한 장씩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사소한 걸음이 모여서 생각보다 많은 걸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년 5월 25일 방송>
2. “바울의 기도(14-21절)”을 읽었습니다. 신앙인을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기도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내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어느 로마 가톨릭 봉사자의 일화를 전해드린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깨달음 때문에가 아니라, 지난주일 신부님께서 하신 설교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봉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이제 생활 속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개신교의 강단과 큰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입에서 끝나버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을 것은 분명합니다. 진정성에서 이미 실패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기도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이름을 주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에게 이름을 주십니까? 부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부모님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이신가를 밝히는 대목입니다. 그 다음이 기도의 내용들인데, 성령의 도우심으로 힘을 가진 내적 인간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인간, 요즘 말로하면 영적인 인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때만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기초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랑에 기초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신비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위대한지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완성된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사도의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가난한 동남아시아인을 비롯해서, 아프리카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신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가 중동과 아프리카 사막에서 쌀농사를 짓는 기술을 전수해 준흐뭇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도의 기도가 우리나라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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