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51(2020. 5. 28. 목요일).

시편 83:3-4.

찬송 2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현자가 천천히 길을 걷는데, 어떤 사람이 바쁘게 곁을 지나쳐 갑니다. “젊은이,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젊은이는 화가 난 얼굴로 짧게 답합니다. “난 아주 바빠요. 삶을 따라잡아야 한단 말입니다.” “아니 삶이 앞에 있는지 뒤나 옆에 있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현자는 이렇게 묻고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네는 무조건 앞으로 달려갈 줄만 알지,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볼 줄은 모르는 모양일세.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나. 삶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어쩌면 저 뒤에서 힘들게 쫓아오고 있을지도 모르고.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삶과 자네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을지도 몰라.” 여행할 때 초고속 열차가 편하기는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한 느낌, 한 두 사람만의 느낌은 아닐 겁니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지는 몰라도, 가는 도중의 풍경들을 놓치지요. 창밖으로 지나가는 강이나 바다 나무와 이것저것 동네 풍경들을 볼 수 있는 완행열차. 그리고 그 풍경들로부터의 사색은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걷는 여행은 또 어떤가요? 몸은 좀 고되지만, 꽃과 새 나무를 관찰할 수 있고, 때론 길가에 앉아서 바람의 촉감과 소리도 느껴볼 수 있지요. 꽉 짜인 일정들로 숨 돌릴 틈 없었던 어떤 분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쉴 시간이 생겨도 온통 일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고, 혹시라도 정해진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내질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니, 겉으로는 윤택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언제까지 이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웠는데요. 어느 믿음직한 친구의 충고에 따라, 자신에게 좀 더 시간을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쉬는 시간을 늘리자, 신기하게도 괜한 잡념과 두려움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일의 능률도 오르고 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도 느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그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갑자가 달려드는 시간에게 허를 찔리지 않고, 허둥지둥 시간에게 쫓겨 다니지도 않겠다는 의지, 그 능력을 느림이라고 부른다. 느림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갖지 않지만,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계획에 이리저리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명예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810일 방송>

 

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17-24)”새 생활의 법칙(25-32)”을 읽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어느 한 구석도 완벽하지 않아서 불만투성이입니다. 외모는 물론 말씨며 걸음걸이까지도 탐탁하지 않습니다. 거기다 생활환경도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듭니다. 제가 이런 제목으로 설교나 강연 부탁을 제법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얼굴 모습이나 말씨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신분 세탁을 해 보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어리석고 헛된 일입니다. 사도는 이런 생각을 이방인의 헛된 생각이라고 진단합니다. 덕성을 잃고 욕망에 붙잡힌 삶이라고 말입니다. 사도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한 말을 사용하고, 화가 나더라도 해 지기 전에 풀라 합니다. 도둑질로 부자가 되려말고 오히려 가난한 자를 도우려 힘쓰라 합니다. 남을 상처 주는 말 대신 이롭게 하는 말을 골라 쓰라 합니다.

   누군들 이런 덕담을 들어보지 않았을까요? 귀가 아플 만큼 듣고 또 들었던 익숙한 말입니다. 아무런 자극을 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런 갈망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 세례를 기억하며 살라고 충고했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먼저 죄를 씻고 죽이는 일입니다. 바로 물속에 몸을 담그는 일입니다. 그 다음에 그 죽음에서 일어서는 일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것을 저는 죄에 죽는 일이고 의로 말미암아 사는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죄를 죽이는 일을 하는 것이 새 생활의 첫 걸음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죄와 싸우는 처절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손을 잡아 주시기를, 필요한 말을 입술에 붙여 주시기를, 선한 손길을 펼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받았던 세례를 기억하는 일 곧 죄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드는 일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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