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53호(2020. 5. 30. 토요일).
시편 83:9-11.
찬송 1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히 꿈꾸었던 이상향, 타이티의 파피에테 항구에 배가 도착하는 순간, 고갱은 벌써 실망을 느낍니다. 항구의 모습이 기대하고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달라서였지요. 고갱에게는 그것도 이미 서구 문명에 물들어 타락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향의 섬이었던 타이티가 고갱에게 정말로 고통스러운 곳이 된 건, 바로 생활고 때문이었습니다. 파리에 두고 온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질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결국 고갱은 그림을 포기할 마음으로 다시 파리로 돌아갑니다. 그랬다가 다시 타이티로 돌아오기는 했지요. 돌아와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림에 온 힘을 쏟아 유명한 대작,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를 완성합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생활고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지를, 생생히 실감시켜 주는 이상향의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도 됩니다. 이상향은 머릿속이나 마음속으로 막연히 연상하고 기대하는 곳이 아니라, 지금 내 생활을 해결해 주는 곳, 지금 내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현재 나의 주소와 내 직업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겨우 이런 곳 이런 일이 내 이상향이라면, 너무 초라하고 서글프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연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캘리포니아의 이미지와, 실제 일상과 행복지수가 다르고, 고갱이 꿈꾸던 타이티가 달랐듯, 이상향도 내가 먼저 나를 책임지지 않거나 책임질 수 없는 곳에선, 한낱 잘못된 이미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2월 15일 방송>b.
2. “자녀와 부모(1-4절)”과 “종과 주인(5-9절)”, 그리고 “영적투쟁(10-20절)”과 “마지막 인사(21-24절)”을 읽었습니다. 네 단락의 말씀들이 구구절절 진지한 묵상이 필요한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지면관계상 오늘은 세 번째 단락 “영적 투쟁”에 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사도는 모든 크리스천은 악마 혹은 암흑세계의 지배자들은 악령과 싸워야 할 현실적인 과제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개명(開明)한 시대에 무슨 악마며 악령이 있을까 의아해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두 영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가장 흔해빠진 악령 혹은 마귀이고, 다른 한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저는 20년간 주일 공동예배에서 어린아이들을 제단 앞으로 불러 앉히곤 그날의 설교주제에 따라서 어린이 설교를 했습니다.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교하려고 힘썼는데, 어느 한 주일엔 성령님과 악령을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엄마가 이제 공부해야지? 하고 말씀하시면 어떤 생각이 들지요? 조금 만 더 놀고 싶은데, 나중에 해도 돼.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누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할까요? 바로 악령입니다. 그러나 엄마 말씀에 순종해야 돼. 공부하러 가자.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란다. 어떤 일을 하던 우리 마음에는 항상 이 두 생각이 찾아오는 거야. 그때마다 우리는 성령님의 생각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성령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악령은 당장은 즐겁고 재미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를 나쁜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성령님은 항상 바른 길로 가라고 말씀하신단다.”
우리들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 지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 바른 길과 거짓된 길, 아름다운 길과 추한 길로 나눠지는 갈림길 말입니다. 이 중대한 시점에 우리는 악령에 마음이 끌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고집한다는 것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그런 분들을 자주 목격하곤 합니다. 어찌하여 비뚤어진 길로 꾸역꾸역 찾아들어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합니다. 그들에게서 찾아낼 수 있는 분명한 한 가지는 악령의 수법, 곧 당장은 이익을 주고 명예를 주고 편한 삶을 주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되돌아보게 된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걸 말입니다. 그래서 물어야 합니다. 성령을 따를 것인가, 악령인가?
3. 오늘은 제가 매월 첫 주일에 설교하는 농인교회에서, 담임이신 우슬초 목사님을 전도신 황미려선교사님의 목사안수 감사예배에서 설교합니다. 황 목사님은 올해 68세로 늦깎이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복음 전파에는 정년도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저의 제자들 중에는 자비량으로 목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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