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01(2020. 7. 17. 금요일).

시편 92:5-8.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더운 날의 뜨거운 차 한 잔, 어떨까요? 혹시 더 더워지시나요? 어떤 분이 차 생활을 하는 스님을 만나러 산사에 갔는데, 무더운 날씨에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헉헉대면서 도착해 암자 물에 세수하고 땀을 식힌 뒤 차 한잔을 대접 받았습니다. 이 더위에 시원한 냉수를 주시지 했는데, 뜨거운 차를 마시고 나니, 잠시 뒤 갈증이 사라지면서 몸도 마음도 마치 맑은 바람이 불어오듯 시원해지더랍니다. 복날 땀 흘리며 먹는 삼계탕이나 한증 같은 것들이 선조들의 이열치열 방법이었듯, 추울 때 차를 마시고 더울 때 차 마시기를 그치면, 진정한 차 마심이 아니다 라고 한 차 생활의 이열치열 정신이 새삼 깨달아진 거지요. 그런가하면 임어당이 중국 문학에 있어서 사랑스런 여인이라 칭했던 심복의 아내 운해 처도 떠오르는데요. 비단 봉지로 싸서 연꽃 봉오리 속에 넣어 두었다가, 아침 일찍 꽃봉오리가 입을 벌릴 때 꺼낸 뒤, 새로 길어온 샘물에 차를 달였는데, 밤새 별빛 달빛 이슬에 맞은 수련향이 배어서 오묘한 향을 냈다고 합니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향기로운 고급차를 끓일 수 없어 생각해 낸 그녀의 지혜였던 거지요. 그야말로 더위를 잊게 해 줄 아름다운 향이었을 같은데요. 고려시대 차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고승 원강국사는 <산속의 즐거움>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선의 경지를 표현했습니다. “한 바립대의 밥과 한 쟁반의 나물/ 배고프면 밥을 먹고 지치면 잠을 자네/ 한 병차 달이남비하나/ 목마르면 들고 와서 손수 달이네이렇게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 냇가에 발을 담그고 마시는 차 한 잔. 신선이 따로 없을 것 같은데요. 산속은 아니더라도 이열치열에 차 한 잔에 마음이 한가하고 평화로워진다면, 그 또한 신선의 삶 안 부럽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85일 방송>

 

2. “아담과 그리스도(12-21)”을 읽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죄로부터의 구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제와 구원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사도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예로 들었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조상으로 죄를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죄는 죽음이라는 심각한 파멸을 가져온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그러나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뱀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아담 스스로 죄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욕망이 그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죄는 매우 가볍게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욕망 말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 점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산의 과일 중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만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첫 번째 인간이 되었고, 그 결과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 죽음을 그 벌로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린 시절 거두절미하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이 훗날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순종한 자녀들도 있었고, 그들은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입니다. 그는 제2의 아담으로 불리기도 합니다만, 그는 첫 아담과는 달리 순종의 길을 택한 경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응답하였습니다. 차갑고 살벌한 세상으로 내려가라 하실 때 예로 대답하였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실 때 예로 대답했으며,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지라 하셨을 때도 예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둘째 아담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주역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순종이라는 용어에 대해서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순종은 단순히 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적절할지 모르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킨 실화를 예로 들곤 합니다. 아들이 천안의 상명대학교에서 10년간 전임교수를 할 때입니다. 제가 아내의 부탁으로 식탁 다리를 고쳐야 했습니다. 그때 2인치짜리 못이 필요했고, 아들에게 못 2천원어치 사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커다란 컴퓨터 세 대를 앞에 두고 강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저의 말을 듣고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더니 !”하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2천원 어치의 못을 사기 위해서 한참 진행 중이던 강의 준비를 멈춘 것입니다. 순종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다 포기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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