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02호(2020. 7. 18. 토요일).
시편 92:9-11.
찬송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인생강의를 하는 어떤 분이 자주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 거울이라고 하는데요. 특히 어르신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남자와 여자 성의 구분을 둡니다. 여성분들께는 결혼 전의 화장대 거울에 붙여놓고 그 시절을 상상하면서 건강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하라고 하고. 남성인 어른들에겐 군대시절이나 총각 때 사진을 세면대 거울에 붙여놓고 보라고 권한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젊었을 때와 지금의 얼굴을 함께 보면, 건강상태도 살필 수 있고 혹은 어떤 근심이 쌓여 있는지도 스스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거울이 보기 싫다는 게 많은 분들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은데요. 젊었을 땐 거울을 참 많이 봤는데, 나이 들수록 그렇지 않는 건,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젊음이 없다는 것만 보기 때문이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실제 내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날은 이 정도면 괜찮지 싶다가도, 어떤 날은 한없이 밉고 마음에 안 들 때,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있지 않을까요? 늘 보던 사람인데도 저 사람은 멋진 구석이 있구나, 또는 오늘 유난히 멋져 보이네 할 때가 있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는 많은 모습들이 숨어 있기 마련이지요. 어릴 적 거울에 햇볕을 비추어서 반사시키는 놀이를 할 때면, 빛이 거울에 닿으면 되돌아왔던 것처럼, 마음의 즐거움이 거울에다 아름답게 반사된다면 그 또한 좋겠지요. 인도의 철학자 라까르 주나의 말입니다. “무엇인가 영원불변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변하거나 없어질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 집착과 고통을 낳는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년 8월 15일 방송>
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1-11절)”을 읽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을 교리 혹은 신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 곳이 신학교인데,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는 성경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교파마다 자신들의 특징 혹은 정체성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은 물론입니다. 가령 제가 속한 루터교회는 이신득의(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다)는 중심 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율법과 복음을 잘 이해하도록 가르칩니다. 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감리교회나 성결교회는 구원과 성화의 삶에, 오순절 교회는 체험에 강조를 둔 신학을 가르칩니다. 이런 신학은 모두 다 그 나름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성경의 다양한 내용을 이런 신학이라는 흐름으로 맥을 잡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교파의 신학에 대해서 주장하거나 비판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다만 제가 속한 루터교회는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고 믿고,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목표를 잃지 않도록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지 않은 것은 허탕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회의 성례 중 하나인 세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며,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씀하는 교리입니다. 즉 물속에 몸을 완전히 담그는 일인 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죽음의 물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매일 자신의 세례를 기억하며 죄에 죽고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설교합니다. 날마다 죄에 대하여는 죽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죄에 대하여 죽는 것 만드로는 불완전합니다. 여전히 죽이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과제를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세례를 기억하는 생활이야 말로 가장 크리스천다운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들어가면서 세례대의 물로 자신을 정화하는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왜 물속에 몸을 담그지 않습니까?” 침례교도의 질문에, “머리끝에 물이 닿으면 담근 게 아닙니까?”
3. 묵상자료 7천호를 조용히 배달했습니다. 7,777호를 배달하는 날, 6천호에 드렸던 숙제를 검사하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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