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26호(2020. 8. 11. 화요일).
시편 99:1-3.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엄마 보세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늘 제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들을 선물해 주셨지요. 빨간 천 체크무늬 천으로 직접 만들어 주셨던 리본, 뜨개바늘로 몸체를 뜨고 그 안에 솜을 넣어서 만들어 주셨던 인형. 많은 손가방들, 꽈배기 무늬 마름모꼴 무늬가 들어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어깨 소울과 멋진 스웨터. 저는 그런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수제 가방을 들고, 멋진 소울을 두르면, 별로 예쁘지도 않으면서 마치 공주가 된 듯 느끼곤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도 참 인색한 딸이었네요. 이런 빨간 리본 만들어 주세요. 이런 토끼인형 만들어 주세요. 부탁은 잘도 했으면서, 그런 마법의 손을 가진 엄마의 딸인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늘 생략해 버렸던 것 같애오. 너무도 당연히 그냥 사랑을 듬뿍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나 봐요.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으면서부터,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사랑을 듬뿍 받기만 했던 인생에서, 이젠 어쩐지 듬뿍 퍼 주어야 하는 인생으로 옮겨가야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거든요. 며칠 전에는 잡지를 보는데, 요리 코너만 읽고 있는 절 발견했지 뭐예요. 이런 반찬도 괜찮겠는데, 이런 샐러드드레싱 맛있겠어. 이러고 있더라고요. 마음속으로 벌써 그 사람을 위해서, 그런 반찬 그런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고 있던 거예요. 이것 먹고 싶어요. 이렇게 엄마에게 주문만 하던 딸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엄마 생각을 하게 됐지요. 엄마는 늘 신문에 괜찮은 요리법이 소개되면, 그 부분을 오려서 냉장고에 붙여놨다가, 언젠가 식탁위에 내놓곤 하셨지요. 그런 일이 사실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어요. 그런데 엄마는 또 어느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조각이불을 만드셨네요. 노안이 와서 눈도 침침하시다면서. 엄마,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행복을 만들어가면서 살게요. 한 땀 한 땀 엄마의 사랑과 위로 격려가 스민 조각 이불처럼, 그렇게 예쁘게 열심히 살게요. 고마워요. 엄마.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7월 7일 방송> b.
2. “형제를 심판하지 말라(1-12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들 신앙생활에서 가장 안타까운 문제 중 하나는 구원과는 무관한 건덕에 관한 문제가 신앙의 본질처럼 논의될 때입니다. 요즘은 많이 약화된 분위기입니다만, 제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는 주초 문제가 교회를 시끄럽게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형님의 친구 한 분은 어느 날 교회에서 책벌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어마 무시했습니다. 향후 6개월간 교회 출석을 정지당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는 죄목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느 보수 교파에서는 주초를 하면 지옥에 갈 것처럼 정죄하기도 합니다. 제가 1979년 독일 남부의 아우구스불그의 한 루터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내려오다가 깜짝 놀랐는데, 조금 전 교회에서 성찬을 인도하던 목사님과 수녀님들(독일루터교회는 있었음)이 노천카페에서 흑 맥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아예 포즈를 취하고 찍으라고 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안식교인처럼 먹을 음식과 먹지 못한 음식을 가린다던지, 주일보다는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킨다던지 말입니다. 이런 문제를 신학에서는 아디아포라(αδιαφορα) 문제라고 부릅니다. 구원과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로부터는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제어는 심판하지 말라는 표현을 했지만,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크리노(κρινω)입니다. “비난하다. 판단하다. 헐뜯는다. 고소한다.” 등의 의미입니다. 본문에서는 왈가왈부하다는 의미가 더욱 더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신앙생활에서 구원을 받고 받지 않고와 같은 중대한 문제들은 하나님의 몫이라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할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원이 아닌 문제들이란 대부분이 아디아포라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럴 경우 우리는 건덕에 관한 일반적인 기준에 맡기면 될 일입니다. 저는 담배가 체질에 맞지 않아서 처음부터 배우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회가 주초문제로 건강도 잃고 가정도 잃는 경우가 된다면,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주초를 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면 주초를 안 하는 것이 건덕이라고 해석합니다. 목사인 제게 이 문제를 가지고 온다면 자신과 이웃의 건강을 위해서 안 하는 쪽으로 권고할 것입니다. 아디아포라 문제들은 신앙의 본질에 관해서가 아니라, 비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강조하는 것 또한 삼갈 일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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