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12호(2020. 11. 5 목요일).
시편 시 111:9-10.
찬송 5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카 민혁에게> 아마, 삼촌 듣기 좋으라고 전설처럼 이야기 된다는 표현을 썼겠지. 하지만 아마도 많은 어르신들께서 자기 복을 차고 엉뚱한 짓이나 하는 녀석이라고 수군거리지나 않을까 싶군. 너는 철들면서부터 가끔 마주치면 깍듯하게 인사도 하고, 요즘 시골은 어떤지, 삼촌은 또 무엇무엇을 기르고 가꾸고 계신지, 가장 궁금해 하더니. 드디어 슬쩍 삼촌의 마음을 떠 보는 편지까지 보냈구나. 물론 넌 신중한 녀석이라, 네 마음이 어느 정돈지, 네가 쥔 패는 거의 감추고, 이 삼촌의 의중부터 살피고는 있지만 말이야. 글쎄, 흔들리는 네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많이 생각해 봤다. 단순한 시골 생활에 대한 낭만 때문에 그런 편지를 쓸 쓰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혹 시골의 성공 사례들, 그러니까 특용 작물이나 특산물을 이용한 새로운 사업구상, 이런 또 다른 투자로써 시골생활을 꿈꾸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직장을 포기하고, 퇴직금 들고 이곳에 내려왔을 즈음, 내게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을 거야. 그런데 시골 생활은 그런 거품, 생활의 허세부터 거둬내 주더구나. 최근 논과 시골 생활에 대해 쓴 어떤 작가가 이렇게 말했지. 우리처럼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논이라는, 말을 거두고 그 앞에서 마땅히 경배를 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이야. 그래, 삼촌도 그렇게 말해 주고 싶다. 귀농이란 어쩌면 식탁에 올라있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걸어온 길을, 역으로 하나하나 추적해 나가보면서, 그것이 어디서 누구누구의 손을 거쳐 지금 여기 놓여 있는 가를 짚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 솔직히 삼촌은 네가 아직 어떤 일꾼인지 잘 모르겠다. 방학 때 한번 내려와서 네가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그건 언제든 환영하마. 그리고 어느 길을 가든 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11월 4일 방송> b.
2. “추앙받던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다 2(4-8절)”을 읽었습니다. 프랑스 손 에 로와르(Saône-et-Loire)에 있는 떼제(Taizé)에 위치한 <떼제 공동체>는 1940년 프랑스 개신교 수도자인 로제 수사에 의해 창설된 에큐메니컬 성격의 기독교 수도회인데, 이곳에서 나온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 to your kingdom”입니다. 십자가상의 한 강도가 주님께 한 말이었습니다(눅 23:42). 기억하다(μναομαι)는 말은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낱말이 아닌가 합니다. 58년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찍은 사진에는 “영원히 잊지 말자.”는 글귀가 쓰여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는 친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들 인간에게서는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이 강도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 그런 공동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4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막 모래 바람 속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태양열을 가려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운 광야의 잠자리를 덥혀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요즘 저는 아내에게 거의 매일 야단을 맞는 편입니다. 잊어버리기를 밥 먹듯 하니 말입니다. 아무리 메모를 해도 돌아서면 그 메모한 일조차 전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구구절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까먹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꺼내놓지만, 그들은 딴청을 부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슬픔과 비극이 있습니다. 이른바 망각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지만, 주님이 나의 구주이신 것은 잊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주님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 나라에서. 아멘.”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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