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11(2020. 11. 4 수요일).

시편 시 111:5-8.

찬송 35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삼촌에게> 삼촌, 저 민혁이예요. 식구들이 모일 때마다 무슨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삼촌의 이야기를, 지금껏 그냥 잠자코 듣기만 했었지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장을 어느 날 갑자기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꾼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삼촌의 선택에 대해, 어른들은 서로 다른 견해들을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러라고 그 아까운 공부를 시킨 것은 아니라는 쪽과 자신이 뜻한 바를 이뤄나가는 그 용기가 가상하다는 쪽이 팽팽히 맞섰지요. 이런 어른들의 입씨름을 삼촌은 알기나 하신 걸까? 싶습니다. 글쎄 저는 삼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 틈이 없어서, 누구 이야기가 더 옳은지 쉽게 판단하기 힘들었지요. 그러다가 세상에는 삼촌 같은 사람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중국 작가 위화의 이야기를 읽는데, 딱 삼촌 생각이 났거든요. 그는 큰길가의 면한 한 병원의 젊은 치과의사였데요. 그런데 어느 날 창밖의 거리를 내다보는데, 앞으로 자기 인생이 그려지더라지요. 일생동안 이 거리만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구나 생각하니,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때부터 자기 인생을 다시 조정해서 작가가 됐다는 거예요. 삼촌, 저는 지금 이 편지를 도서관에서 앉아서 쓰고 있어요. 3 때 까지는 대학 입학을 위해서 죽어라 공부를 했는데, 이젠 취업을 위해 그 때보다 더 절실하게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가끔 도서관 너머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곤 해요. 평생 먹고 살기 위해서 애쓰다가 죽는 게 인생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쩐지 씁쓸해 지거든요. 삼촌은 어떠세요? 가끔 전설속의 철학자 같은 삼촌 곁에 내려가 이야기도 듣고, 일도 배워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있어요. 물론 농사나 지을까? 하는 안이한 도피가 아니라, 정말 진지한 열정, 이런 것을 느끼는 거지요. 그런데 저 같은 일꾼, 삼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14일 방송> a.

 

2. “추앙받던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다(1-3)”을 읽었습니다. 개인이건 사회건 혹은 국가건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는 때문입니다. 문제는 제 역할인 순기능을 다하고 소멸했는가, 아니면 정반대로 역기능을 하고서 소멸했는가라고 하겠습니다. 어제는 한 개그우먼이 그녀의 모친과 함께 유명을 달리했다 해서 매스컴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36살이라는 젊음이 아쉬웠고, 타인을 즐겁게 하는데 온 삶을 바치느라 정작 자신은 즐겁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얻으려고 힘썼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솔로몬 이후 젊은 왕 르호보암은 나라의 분열을 가속화시켰고, 마침내 여로보함이 이끄는 10지파를 동맹으로 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지파는 르호보암의 남왕국 유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문제가 불거져 나왔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북왕국 사람들도 왕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북왕국은 서둘러 수도(首都) 세겜에 성전을 지어 예루살렘 성전출입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아론처럼, 북왕국 세겜의 성전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한 것입니다. 당연히 질문을 해야 합니다. 유일신 야훼 하나님이 아니라 금송아지라니요? 십계명 제1조가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처음에는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성전 기물들이 존중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우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분명한 현실입니다. 80년대 초에 저의 형수님은 고향의 새 교회당에 설교대를 봉헌하였습니다. 봉헌할 뿐 아니라 시간 날 때마다 깨끗한 수건으로 설교대를 닦고 청소하였는데, 처음에는 기도를 드린 후에 청소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정말 하나님처럼 귀중하게 여기게 되더랍니다. 인쇄된 성경이 출판되기 전에는 성상(Icon)이나 성화가 성경을 대신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성상이 하나님 역할을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목적과 수단의 혼동입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이런 현상을 항상 주의하며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심지어 전쟁중의 군인들은 성경책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부적처럼 생각하기도 했었다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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