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13(2020. 11. 6 금요일).

시편 시 112:1-3.

찬송 31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에게> 너와의 전화 통화를 마친 후, 멍하니 한 시간쯤 그냥 앉아 있었어. 그 때의 기분 어떤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정도쯤이야 견딜 수 있어. 이 정도쯤 문제없어. 이렇게 끝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가면서 두 다리가 덜덜 떨리는 무거운 등짐을 지고서, 그동안 난 용케도 걸어 나가고 있었던 같애. 친구라고 믿었던 네 전화, 그리고 네가 전하는 떠도는 나에 대한 소문을 접하면서 그냥 무릎이 딱 꺾이는 기분이 들더라. 물론 그 때 내 등 짐 위에 얇은 종이 한 장만 더 얹혀져도 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거 너는 몰랐겠지. 어쩌면 네가 안 좋은 순간에 전화를 걸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친구들 몇 명이 모인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 넌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도 했을 거야.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제일 가까운 친구라는 나만 모르고 있었다니 싶어서, 좀 섭섭했을 지도 모르고.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떠도는 소문들이 모두 사실이냐고, 그렇게 부주의하게 확인했어야 할까? 사실과 부풀려진 소문들을 가려내서 확인하면 네 마음은 좀 더 편할까? 그래, 소문은 늘 실제보다 부풀려져서 떠돌지. 그게 소문의 법칙이니까. 하지만 네가 친구라면 적어도 소문이 또 한 번 확대 재생산되는 그런 자리에서, 좀 더 확실한 내 편이 돼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런 이야기 그만들 하자.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덮어버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런 말이 떠돌고 있더라는 사실조차도 덮어버린 채, 언젠가 내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냥 내 마음이 그래. 너는 걱정돼서 전화했는데, 내가 화만 내고 끊어서 미안해. 시간이 좀 더 지날 때까지, 기다려 주렴.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15일 방송> a.

 

2. “추앙받던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다 3(9-16)”을 읽었습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그리고 교회나 국가도 역시 부침(浮沈)의 과정을 갖게 마련입니다. 완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고 불의한 세력에 의한 공격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되면 자신이나 사회가 지나온 과정들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순경(順境)일 때보다는 역경일 때가 더 분명하게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경 앞에서 많은 교훈을 얻기도 하고 반성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던 한 탤런트가 택배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내용이 유투브에 올라왔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고 실제 상황이었는데, 눈물겹도록 비참한 생활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흔한 말로 감독이나 피디가 써 주지 않는 퇴물 배우가 된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 순간의 주먹질로 연예계에서 퇴출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음주운전이나 도박과 사기사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전히 잘 나가는 현실 속에서 말입니다. 정의의 잣대가 언제나 똑 바른 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자신들을 도와줄 존재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민족인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세상의 어떤 다른 신들이 거들떠 볼 수 없는 특별한 민족이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어리석고 헛되고 무력한 신들이지만, 그런 존재라도 붙들고 의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있었는데, 이스라엘만은 해당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 야훼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문자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인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적어놓은 문서를 누구도 찾거나 파기하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놓았다고 선지자는 고발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세아 선지자의 고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화냥년보다 더 지저분한 고멜을 찾고 찾으신다는 말씀이나, 그들의 죄악상을 일일이 기록해서 보관하고 있다는 말씀은, 표현 기법은 직설법과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바탕에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망할 사람에게 해줄 말이 없어야 진정으로 미워하는 것이라 하겠는데, 구구절절 징벌을 알려주고 겁박하는 언급은, 다시 사랑의 가족을 만들어보자는 희망의 약속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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