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35(2020. 11. 28. 토요일).

시편 시 118:12-16.

찬송 34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리한 섭이에게> 섭아, 고모도 네가 조카라기보다는, 의젓하고 특별한 친구 같다는 생각 자주 한단다. 넌 너의 특별한 조건 때문에, 또래 누구보다도 더 많은 책들을 읽고 더 깊게 생각하고 더 예민하게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끔은 동갑내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어. 그렇게 네가 예리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며칠 전 내가 또 좀 무신경했었지. 너의 편지 받기 전에 이미 고모도 뭐가 어긋났나, 뭐 때문에 내 친구가 조금 골이 났나, 느낄 수 있었단다. 매일 매 순간 집 밖을 벗어나면서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불편한 너에게 너무도 쉬운 격려의 말을 했던가 봐. 한 예민하신 섭이에게 고모도 앞으로도 좀 더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표현을 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겠다, 싶었어.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픈 말은, 예리한 네가 해석한 그대로야. 고모는 말이야. 신체의 다름, 장애 이런 것을 떠나서,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정당당하게 자신과 마주서느냐 라고 생각하거든. 고모나 너나 모든 다른 사람들이나 타인이 싫어질 때, 칩거를 할 수는 있을 거야. 그래서 자신의 동굴 속에만 머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절대로 자기 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단다. 그러니 그럴 땐 차라리 정정당당히 자기 자신과 정면 승부하는 게 낫지 않겠니? 고모 생각에 넌 그런 정면승부에선 보통 사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 너의 다름 너의 장애를 매 순간 인식하는 그 만큼, 네 자신이 누구인지도 그만큼 명확하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거든. 네 속마음을 차분히 털어놓아 주어서 고마웠어. 우리 이렇게 편하고 솔직하게 더 자주 이야기 하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126일 방송> b.

 

2.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1-11)”을 읽었습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선교지입니다. 그 중에서도 손과 발에 쇠사슬로 묶여 죽을지도 모르는 감옥생활과 그에 따른 시련을 경험한 곳인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로써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남다른 사랑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이방인 교우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에도 여러 번 헌금으로 사도를 도왔습니다(4:10 이 하).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빌립보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1세기 교회들에 흔하게 발견되는 문제들, 고질병인 분파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 같은 거짓 교사들의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히 교회의 사분오열을 염려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서신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경험상으로는 겸손이란 성공과 출세하기 전의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덕목입니다. 그러니까 성공과 출세를 한 후에는 겸손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데 빌립보 교회는 교만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왜 그리스도 교회가 낮아져야 하고, 바보스러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 성령의 감화로 사귄 관계, 서로 같은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겸손해 질 수 있다고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이기적인 야망과 허영이 사람간의 관계를 무참하게 깨트려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라고 언급합니다. 하나님과 같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낮은 인간들 속에 오신 분이시고, 그리고 별 볼 일없는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는 순종의 길을 걸으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겸손한 주님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그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반드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칭찬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겸손의 길을 걷기 힘들어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보상이 너무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 너머를 보는 믿음을 소유할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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