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32(2020. 11. 25. 수요일).

시편 시 118:1-4.

찬송 5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소중한 등대지기에게> 며칠 전 딩동 딩동 쏟아져 들어오던 그대의 문자와 사진들, 잘 간직해 놓고 지금까지 들여다 보곤 하지. “, 첫 눈이 와요. 서울은 어때요? 사진 보내요. 반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었어요.” 그대의 생생한 중계방송 덕분에, 나는 그대가 머무는 남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어떤 모양의 눈사람들이 몇 개쯤 만들어졌는지 훤히 꿰고 있을 수 있었어. 가끔 일찍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 갑자기 기운이 뚝 떨어진 저녁 땐, 사실 그대와의 거리감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되는데. 그럴 때 그대는 마치 그런 내 마음을 다 읽고 있는 사람처럼, 저 멀리서 번쩍 밝은 빛을 보내주지. “저 여기 있어요. 이쪽을 보면 돼요.” 이런 선명한 신호 말이야. 어디 그 뿐인가? 꽃이 피었다고, 오는 처음 나비를 봤다고, 교정의 은행나무가 거대한 조명등처럼 노랗게 빛난다고, 종알종알 중계방송도 해 주지 않아. 전화로 문자로 메일로 그런 중계방송을 접하면서, 비로소 나도 봄꽃을 보고, 나비가 날아다니는지, 주변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고, 무심히 지나쳤던 은행나무 가로수들에 눈을 주기도 한다는 거, 그대는 알고 계시는지. 그럴 때 그대 모습은 영락없는 등대지기 같지. 오직 나 한 사람을 위해 쉴 새 없이 밝은 빛을 보내주는 등대지기. 아마 그대에게도 그렇겠지만, 가끔 주위 친구들이나 우리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를 걱정해 주곤하지. 그 때마다 난 그 물리적 거리 때문에 누리는 행복감이라는 것도 있다고 대답하곤 해. 멀리서도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번쩍번쩍 부지런히 신호를 보내는 맛, 행복감 말이야. 멀리 있는 가까이 있든 언제나 우리 서로에게 좋은 등대지기로 남기로 하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125일 방송> a.

 

2.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영적 축복(3-14)”을 읽었습니다. 축복(祝福)이라는 말은 복을 빈다는 의미인데,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쓸 때에는 강복(降福)이 더 그 뜻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는 축복이라는 복을 받는다는 의미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복이란 빌거나 받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서로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축복합시다.”라고 말한다면, 이때는 서로 복을 빌어 줍시다 는 의미이고, 자신이 가진 복을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크리스천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갖 복을 베풀어주셨음을 천명합니다. 그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단서 조항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곧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신앙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모든 죄에서 용서받았고, 죄에서 구출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엊그제 불교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런 종교에서는 자력 구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은 축복이나 구원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은 흉내를 열심히 합니다. 아무 근심 걱정이 없다며 언제나 행복하다고 얘기합니다. 거짓말입니다. 밥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기쁘다고 말합니다. 그도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이상 배고프고 목마르고 피곤하면 견디기 힘듭니다. 행복은 우리의 의지로 지탱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십자가 위해서 목말라 하셨고 아파하셨습니다. 사도는 때가 차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세대를 누가문서 기자는 성령의 시대라고도 하거나, 중간기(interim period)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사람들을 깨우쳐 주셔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게 하시고, 또 믿음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바울사도는 이를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already but not yet.” 그런 특징을 가진 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온전한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철부지 어린 아이 시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철든 자녀로 살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고, 온갖 좋은 영적 축복들을 빌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의 아홉 열매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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