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56(2020. 12. 19. 토요일).

시편 시 119:65-68.

찬송 16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장난꾸러기 동생에게> 니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람에, 조금 전에 엄마한테 전화 왔더라. 엄마는 날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겠더래. 당신만 해도 설마 핸드백 하나에 20만원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으시다고. 그래서 엄마나 나나 구식은 구식이다, 이러면서 웃고 말았지. 다만 한 가지 억울한 것은 말이야. 니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기 전까지 약 30분 동안, 내가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했다는 거야. 어떻게 널 설득할까? 우리가 정해 놓은 예산은 부모님 합쳐서 20만원이었잖아. 그러니 무려 두 배의 예산초과를 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소심한 이 언니 얼마나 고민했다고. 그 핸드백을 포기할까 이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지금 와서 고백하는데, 정말 디자인 좋고 요모조모 튼실하게 잘 만들어졌더라고. 우리 엄마 이거 하나 사다드리면, 평생 핸드백 고민은 안 하셔도 되겠다 싶었지. 그러면서 가격도 이 정도면 감수할 만 하다고 생각하면서 진짜 좋아했었어.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지? 그런데 그 꿈이 깨지고 나니까, 어이없기도 하고 좀 창피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척 쓸쓸했어. 세상 살기 좋아졌다고, 편리해졌다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 혜택이 정말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생각하면 아닌 것 같거든. 나나 엄마에게 그 핸드백이 그림의 떡인 것처럼, 다른 혜택들도 그저 그림의 떡으로 느낀 사람이 너무나 많겠지. 배가 안 고플 때야 괜찮겠지만, 배가 고플 때, 그림 속의 떡은 오히려 사람 더 약 올리는 것 아니겠니? 그 생각하니까 좀 마음이 아프더라. 아까 엄마가 전화 끊으면서 그러셨어. 성탄절 선물로 그리 과한 것을 받는다면, 그 자체가 성탄절을 배반하는 것이래.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난 계속 행복한 개구리로 남기로 했어.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1222일 방송> b.

 

2. “재림의 약속(1-18)”을 읽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약속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사경회(査經會)라는 집회가 자주 열렸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사흘에서 닷새 동안 집중적으로 이웃 교회 교인들까지 동원해서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의 교회론, 구원론, 부부윤리, 자녀교육 등등 필요에 따라서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다양한 내용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60대 이상의 크리스천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온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경회에서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재림과 종말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대가>를 가장 많이 불렀기 때문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눈물 머금고 우리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그만큼 삶이 팍팍하고 고단했으며 또 배가 고팠던 것입니다. 1959년은 제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쉴 때인데, 그 해 봄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었던 누이와 함께 들로 나가서 쑥을 뜯어다 말려 쑥 버무리를 해서 가을 추수를 할 때까지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특히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사항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허구한 날 술독에 빠진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으면서 살아가는 삼실리 길을 걸어서 오는 아무개 교우며, 어느 가을 밤 소리죽여 울음소리가 들리던 바로 우리 앞집 엄 씨 아저씨 동생에게는 주님의 재림 이야기는 다시없는 꿈이었을 것입니다. 한센씨 병을 얻어 두문불출하다가 끝내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고대가>를 부르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다릴 희망도 땀 흘릴 목표도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날은 이토록 지루하게 길고 답답하기만 한 것일까요? 베드로서 기자는 우리들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말씀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같다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가 969세를 노아가 950세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춥고 배고프지 않더라도, 주님이 오셔서 다스릴 재림의 시간이야말로 가장 복된 시간이라고 믿는 종말 신앙이 우리에게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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