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182호(2021. 1. 14. 목요일).
시편 시 119:169-172.
찬송 2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고 절대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하루 현미 4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으며, 모든 일에 제 이익을 생각지 말고, 잘 보고 듣고 깨달아,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찾아가서 간호해 주며, 서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대신 져 주고, 남의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의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겨울에는 허둥대며 걷고,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려지고,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은하 철도의 밤]을 쓴 미와자와 겐지는 말합니다. 나는 누구한테나 바보라 불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또 누구든 내가 가서 해줄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바보라고 불려진다면 참 좋겠다고, 미와자와 겐지가 생각하는 사람. 그건 이렇듯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4년 1월 21일 방송>
2.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1-12절)”을 읽었습니다. 중풍이란 현대의학에서는 뇌졸중으로 부르는데,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발생하는 병명인데, 평생 6명중 1명이 발병하며, 6초에 1명이 사망하는 매우 흔한 병이라고 합니다. 뇌세포로 흐르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데, 정맥 혈전일 경우는 4-5시간 내에, 동맥 혈전일 경우는 24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중풍 환자는 제법 오랜 시간동안 경증 환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네 사람에 의해서 주님께 데려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어서 도무지 주님 앞으로 다가설 수가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담요의 네 귀퉁이에 줄을 매달아 주님 앞으로 내려서 치료를 받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삶에는 이 중풍 환자처럼 앞이 꽉 막힌 문제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장벽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장벽을 뚫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게 오늘 우리들이 주목해야 할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환자와 그 이웃들을 보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칭하시고 그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신 후 그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설에 오른 것입니다. “하나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가 바로 그 구설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중풍 환자를 치료하는 일화에서 중심점은 치료의 지름길과 바른 길을 묵상하게 합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궁시렁대는 말들을 들으셨고, 이에 대해서 당신의 분명한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죄를 용서해 주는 방법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본을 치료하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그대로 둔 채 치료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현상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제 힘으로 일어나서 걸을 수 없는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주님은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세상에 밝히시려 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이 세상으로 하여금 사람들을 슬픔과 절망 가운데로 이끌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란 그 한복판에 죄가 있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시려 하셨다는 말입니다. 죄는 이 세상 안에 짙게 깔려 있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목표를 빗나가는 일체의 생각과 행위가 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들이 이런 죄를 짓게 된 배경에는 헛된 욕망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되어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되어 보려는 넘치는 욕망 말입니다.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권력과 명예에 대한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되는데, 참 어리석은 결과를 만들곤 했습니다.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압살롬이 그랬고 독재자들이 그랬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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