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43(2021. 3. 16. 화요일).

시편 시 139:14-16.

찬송 46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의 길이며. 자기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 질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소유하는 진리에 의해서 측정할 수 없으며, 그 진리를 파악을 위해 그 사람이 기우린 노력과 고통에 의해 측정된다.” 코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남긴 말입니다. 레싱은 1729년부터 1781년까지 52년을 살았던 독일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입니다. “독일의 정신에는 귀족풍의 프랑스 극이 맞지 않는다. 그라니 독일적인 성격에 부합되고 현실에 충실한 극을 써야 한다. 따라서 독일의 극작가들은 셰익스피어를 모법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레싱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독일 극이 프랑스 극의 영향에서 벗어나는데 크게 이바지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독단론에 반대해서 편견 없는 진실 추구를 주장했는데요. 성찰하는 듯 한 레싱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미덕과 마음, 양심과 열정 사이의 갈등들을 막힘없이 풀어냈고, 특히 등장인물들의 성격묘사에 아주 탁월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레싱 자신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는데요. 철학과 문학 연구에서는 풍부한 수확을 거두었지만, 건강을 잃었고, 37살에 오랜 친구의 미망인과 결혼했으나 곧 사별했습니다. 만년을 고독과 가난 속에서 보내다 쓸쓸히 묻혔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레싱의 남긴 말들 속에는 늘 미덕, 양심, 겸손 등 사려 깊고 희생적인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가 겸선하다. 인간의 됨됨이는 그가 가진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데 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213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시다(16-21)”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해시키려고 힘써야 하는 처지에 있는 신학자나 목사들은, 가능한 쉬운 말로 그리고 그 청중이나 독자들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기적 일화를 논리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담이나 세상에 떠도는 이런저런 말들을 소개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신앙으로 풀어야 할 말씀을 이성으로 풀려고 억지를 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말씀 중의 하나가 기적을 설교할 때 자주 벌어지곤 합니다. 최근에 한 격투기 선수가 물 위로 달음질하는 광고가 방영 중에 있는데, 물 위에 철봉대를 설치해 두고 거기에 매달려서 발만 물위에 스치는 장면을 연출해서, 마치 물 위로 달려가는 것처럼 꾸민 것입니다. 그런데 의도된 내용이었겠지만 발만 촬영해야 하는데 철봉에 매달린 것을 찍어서 코미디화한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25년 전 한 재미교포 교회 성경반에서 있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한 참석자인 화학자라는 집사님이 똑같은 대사를 설명하고 있었으니까요. “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물 위로 떼어 놓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기적은 기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옳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은 신앙으로 이해해야 마땅하고 말입니다

   거칠게 바람이 불고 바다 물결은 사나워졌을 때,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을 제자들이 보고 처음에는 유령인가 해서 무서워했다고 공관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6:49, 14:25).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일은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당시로써는 유령이나 가능한 일이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령이 아닌 주님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이 주님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부끄럽고 잘못 생각해 온 것을 뉘우쳤습니다. 제가 기적 행사자의 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심지어 기도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 교우 중 한 분이 중풍으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은 기도로 고칠 수 있다며 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지내시겠다 해서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기도실 계단을 중간쯤 걸어서 올라오신 것입니다. 제가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새벽마다 안수하며 기도드린 효력이 나타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병아리 목사였던 제가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교우들이 달려와서 눈물로 감사의 기도회까지 가졌는데, 그런데 그건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 분의 마음에 자신의 아내에 대한 의처증에서 비롯된 온갖 분노와 적개심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기적을 행사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할이고 우리는 그 기적을 신앙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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