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44호(2021. 3. 17. 수요일).
시편 시 139:17-18.
찬송 5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채원의 중편 소설 [겨울의 환] 가운데서 인용합니다. “밥상을 차리는, 그리고 사립문 부여잡고 기다리는, 이 두 개의 영상을 끌어내기 위해, 지난 밤새 진통을 하며, 이 많은 말들을 쏟은 것 같습니다. 저는 삶의 열쇠를 찾은 기분입니다.” 1989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김채원의 중편 [겨울의 환]은, 가혜라는 여자가 당신이라고 호명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이지요. 남자는 가혜에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을 써 보라고 합니다. 43살의 가혜는 그동안의 삶을 돌아봅니다. 동생과 동치미를 먹으며, 촉수가 희미한 전등불 밑에서, 방학숙제 그림일기 속의 눈이 내리고 있는 풍경을 그리던 기억. 그 기억에서 가혜의 기억은 32살의 시간으로 건너뜁니다. 32살의 가혜는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시집가기 전에 쓰던 장롱과 거울, 조그만 책상 같은 것들이 그대로 놓여 있는 방으로 들어섰을 때, 제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지요. 그 무렵 가혜는 그 남자를 만납니다. 손지갑을 챙겨들고 동네 슈퍼마켓으로 나섰던 가혜는, 대문을 쾅 닫는 순간, 어둠속에 서 있던 남자를 발견합니다.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온 그 남자. 그 남자는 가혜를 모르지만, 가혜는 그 남자를 알 수 있었지요. 아주 오래 전 꼬맹이 시절에, 야구공을 가혜 머리에 맞힌 남자. 그 남자에게 길 안내를 해 주고 난 가혜는 생각합니다. “아, 무슨 마술이 없을까? 악마와 결탁할 수는 없을까? 어떤 흥정이 가능한 것인가? 제게 있어 중요한 어떤 것을 내놓고, 그리고는 당신과의 연을 가능하게 하는.” 그 후 그 남자와 3년 동안 만남을 갖던 중에 남자가 말하지요. “50세가 되는 해까지만 만나자고요.”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에 대해 써보라.”고 합니다. 가혜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삼촌을 기다리느라 전쟁 중에 피난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혜의 마음에 두 가지의 영상이 떠오르지요. 사립문 붙잡고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군불 지피며 밥상을 차리는 할머니. 가혜는 누군가를 기다릴 줄 아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떨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혜는 남자에게 편지를 씁니다. “여기 굳건히 서 있을 테니, 언제든 원하실 때 돌아오라.” 고요. 그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 줄 수 있다는 것, 대문 앞에 나와 그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게 나이 들어가는 여성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사랑의 구원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년 2월 13일 방송>
2. “생명의 빵 1(22-40절)”을 읽었습니다. 2천 년 전 갈릴리 호수를 배경으로 한 떼의 무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면, 아마도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21세기에 BTS의 공연장을 찾아서 모여드는 아미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2천 년 전에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굶주린 배를 채워줄 빵을 찾아서라고 한다면, 우리 시대의 아미들은 자신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달콤한 노래 가락을 흩뿌리는 우상들을 찾아서라고 할 것입니다. 비록 시대는 달리할지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심각한 문제들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우상을 찾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희망사항들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겠는데, 배고픔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그 다음은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시대를 초월해서 사람들의 희망사항은 자기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 초인이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갈릴리 호수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기 위해서, 그리고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할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 인류가 아귀다툼을 하며 살았던 목적이란 썩을 양식을 찾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도 썩을 양식이었습니다. 매일의 양식으로 족한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배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던 것은,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 나아가게 하는 도구들이었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주로 믿게 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의 양식이 아니라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루 속히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영원히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먹는 일, 그것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진리에 이르기까지만 썩을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묵상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례전은 교회의 공동체성의 표현. / 요 6:52-59. (0) | 2021.03.19 |
---|---|
주님을 만나는 것은 은총이었습니다. / 요 6:41-51. (1) | 2021.03.18 |
기적은 하나님의 역할로 해석하고 이해할 것. / 요 6:16-21. (0) | 2021.03.16 |
배고픔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 요 6:1-15. (0) | 2021.03.15 |
이성을 신앙에 연결하는 기적들. / 요 8:48-59. (0) | 2021.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