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91호(2021. 8. 11. 수요일).
시편 시 22:19-21.
찬송 48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직장은 지방에 있는 지사 근무였습니다. 그러니 낯선 곳에 가서 적응하느라 처음에 식사도 무조건 사먹었지요. 그러다 숙소 근처에서 열리는 5일장 구경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차츰 요리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우선 요리책부터 이것저것 사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딱 자신과 같았던 요리사도 있었습니다. 한 때는 실파와 부추도 구별 못할 정도였고, 부엌일도 해본 일도 없었지요. 실험실에서 비커(beaker)만 만지고 미생물만 봤다고 합니다. 다만 그릇 모으는 취미가 있기는 했지요. 그러다보니 어느 날 그 그릇들 안에 담길 요리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내는 요리책까지 쓸 요리가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릇 모으는 취미도 없고 여자지만 요리에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과일을 깎을 줄 알게 된 것도 대학엘 들어가서 한참이나 지나서였지요. 그래도 불편하거나 아쉬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단지 불편하고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호기심이 생겨서 요리책을 뒤적입니다. 뒤적이다가 마침내는 직접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골이라 요리책 속 재료들을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샤프랑 같은 재료는 어디서 구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재료들로 새로운 요리들을 따라 만드는 건 정말 새로운 신세계였습니다.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던 신세계와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신세계가 주는 좌절과 실패가 많았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남자 친구 생일 선물로 처음으로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답니다. 그런데 만들고 보니 치즈 케이크가 아니었습니다. 인절미가 됐더랍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8월 17일 방송>a.
2. “물위를 걸으신 기적(45-52절)”과 “게넷사렛에서 병자들을 고치신 예수(53-56절)”을 읽었습니다. 기적이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대에서는 이런 기적의 사전적 정의는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들이 가능한 일들로 바뀌었거나 계속해서 바뀌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새처럼 하늘을 날수도 있고, 물고기처럼 심해를 헤엄칠 수도 있으며, 영원한 숙제처럼 여겨지던 질병들도 대부분 고칠 수 있는 시대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적이라는 말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적이란 하나님의 역사 참여” 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 찾아오시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이해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적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기적을 실감하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곤 합니다. 저와 같이 심장병이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게 될 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심을 깨닫고 기적을 노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적은 멀리 있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언제고 느끼고 체험하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저와 같이 기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지역 목사님 한 분과 오찬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당뇨 합병증으로 사경을 헤매다 퇴원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신 주님께서 새벽 4시쯤에 그것도 풍랑이 일어 제자들이 탄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위태로운 때에, 바다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유령으로 생각하고 비명을 질렀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님의 능력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주님이 배에 오르실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모두 힘에 겹도록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주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너희 아홉 남매와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2시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제 아이들과 함께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충분하니까 말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첫 기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만 우리 곁에 계시다면 두려울 것도 문제될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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