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23호.
시편 시 30:4-6.
찬송 41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거지요. 학생 때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인생에 큰 보약인지, 학창실절이 지나야 깨닫고요. 아이를 키워보고 나서야 부모님의 큰 사랑을 깨닫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그늘이었는지 깨닫습니다. 떠나고, 지나고, 그 사라지기 전에 붙잡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요. 지금 알고 있고 깨닫고 있는 것만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 수 있으면 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6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째 주일의 구약 사 50:4-10을 본문으로 “야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요즘 전 세계적인 구호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없다면,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이라고 합니다. 슬픈 얘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주제는 야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우리 크리스천이 힘써야 할 최상의 과제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선한 생각을 부어주십니다(4-5절).
고달픈 자를 격려하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하며, 매일 배우고 싶은 깨우침을 주시고, 남의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귀를 갖게 하시고, 의롭고 자랑스러운 일에 앞장서게 하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라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스럽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삶을 꿈꾸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의 단편소설가 나다나엘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고,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자신의 거대한 영지를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분배해 주고, 자신의 소설에서 나오는 인세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고자 힘썼습니다. 어떻게 이런 남다른 생각들을 실천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흔드는 하나님의 사랑이 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악한 생각은 마귀의 소행이지만, 선한 생각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나님만이 거짓과 불의를 견디게 하시며 당당하게 하십니다(6-7절).
김지하 사 김민기 곡의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70년대의 폭력은 겉과 안이 사악함으로 똘똘 뭉쳐 있었으나, 21세인 요즘의 거짓과 불의는 겉은 합법을 가장한 지능적인 악랄함으로 뭉쳐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공식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양심들입니다. 그러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불의 앞에서 끝까지 당당하게 참고 견디게 하는 힘은, 십자가에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신 우리 주님이 주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지켜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8-10절).
시편 121편은 절망과 슬픔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강렬한 시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희망이 없다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은총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아닌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누릴 축복입니다(엡 2:8). 저는 인생을 파도위의 삶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파도에 자신을 맡기듯 포기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도 그 너머 먹구름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파란 하늘을 애써 찾으려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그를 넘어트릴 힘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말게 하옵소서.”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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