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02.

시편 시 25:6-8.

찬송 52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처서가 지나면서 바람이 정말 달라졌어요. 아무리 더워 봐야 처서 지나면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르신들의 가르침 같은 한 마디가 그렇게 딱 맞을 수가 없었습니다. 열대야도 사라지고 이제 낮 더위만 수그러들 며는 아주 이상적인 날씨가 될 것 같은데요. 오늘도 좋은 하루를 기대합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824일 방송>

 

2.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열셋째 주일로 구약 이사야 29:11-19을 본문으로 행동하는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루터는 신학생들에게 “oratio(기도), meditatio(묵상), tentatio(실천)”이라는 아주 오래된 영적성장의 훈련법을 소개한바 있습니다. 겸손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와, 성경을 집중적으로 반복 성찰하는 묵상과,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고 고뇌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고 고백하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물어야 합니다.

 

예나 제나 입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11-14).

말이 무성한 시대는 위태로운 징조입니다. 진짜보다는 가짜가 판을 치는 때문입니다. 복음가로 도배된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양심을 속이는 판국에 감정을 위장하기란 너무 쉽습니다. 이사야 시대가 그랬다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데도 실상은 습관에 젖은 것이고, 진심은 멀리 떠난 다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부동산 장사소굴로 만드는 목사의 신령하게 부르는 찬송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벽창호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만을 외치는 가난뱅이 목사는 아무도 동정조차 하지 않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구조가 정상일 것 같습니다. 입으로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데 당연할 것 아닙니까?

 

옹기그릇이 옹기장이를 비난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15-16).

하나님 책임론을 들먹거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는 것도,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 때문이랍니다. “왜 나를 이렇게 낳았어?” 맞선에서 퇴짜를 맞은 처녀가 제 엄마에게 했던 첫 마디 말이랍니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하건 엄마 탓이고, 하나님 탓으로 돌리면 된다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가장 쉬운 문제풀이가 아닙니까?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일 테니까요. 왜 나를 가난뱅이 농부의 자식으로 보내셨을까? 왜 힘든 삶을 살도록 세상에 태어났을까? 이런 물음을 계속하노라면 가치 있는 대답과 희망의 섬광이 비출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찾으러 애쓸 때, 김구나 안창호가 되진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쓸모 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겝니다.

 

수풀이 과수원이 되고 천민이 귀인과 뒤바뀌는 날이 옵니다(17-20).

하나님의 뜻은 깊을 뿐 아니라 넓고 높으셨습니다. 그래서 쉽게 눈으로 마음으로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멀지 않아 의미 없어 보이던 수풀이 근사한 과수원으로 바뀌고, 귀머거리는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되고, 캄캄한 세상을 살던 소경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천덕꾸러기 가난뱅이와 병자들이 폭군도 아첨꾼도 그리고 악한 일을 일삼던 못된 건달들이 다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춤을 추고 노래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으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구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제 갈 길을 고집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알고 믿을 것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연약한 손과 발음 붙잡아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진 그래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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