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42호(2021. 10. 1. 금요일).
시편 시 33:10-12.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의 사상을 톨스토이 주의, 또는 톨스토이즘이라고 하는데요. 한 개인의 사상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 만큼 그의 문학과 사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톨스토이는 1828년 9월 9일, 오늘이네요. 러시아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친척들의 보살핌 속에서 외롭게 자라납니다. 성장해서 러시아의 카잔 대학을 다니다가, 진부한 교육 방침에 실망해서 중퇴하고, 고향에 내려가 자신의 영지 내에 있는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서 좌절합니다. 그리고 한 때는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1852년에 [유년 시대]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길을 가다가, [안나 카레리나]를 집필하던 쉰 살 무렵에, 종교와 현실 사이에서 극심한 방황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애써 공부했던 철학과 신학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톨스토이는 가난한 농부들의 삶을 직접 보면서, 그 순박한 농민들의 삶을 통해 인간은 신에게 봉사해야 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화내지 말라. 욕정을 품지 말라. 헛된 맹세로 자신을 구속하지 말라. 악으로써 악에 대항하지 말라. 정의나 불의를 모두 잘 대하라. 이렇게 5계명을 선언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톨스토이즘의 뿌리인데요. 하지만 사유 재산을 포기하려는 그와, 재산을 지키려는 부인과의 마찰이 계속되었고,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부활]을 발표하자, 러시아 동방정교회에서는 이 작품이 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를 파문시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년 9월 9일 방송> a.
2. “그리스도의 사도(1-7절)”을 읽었습니다. 사도라는 용어는 예전 봉건사회에서는 사신이라는 말로도 사용되었는데, 자신의 주인에게 특별한 임무를 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라는 말을 즐겨 사용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누군가에게 예속되어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부여된 말만 하는 것을 싫어하는 때문입니다. 어느 주미 대사가 본국의 확인도 없이 자기 말을 본국의 뜻인 양 말하다가 소환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대사로써 월권행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가끔 설교단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면서 제 멋대로 지껄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사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자신을 말할 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정신을 곧이곧대로 전하는 사람으로 충실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의미를 일반 성도들에게 전하면서, 사도가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심판하는 잘못인데, 그것은 주님의 몫인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무언가 잘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칭찬 역시 훗날 하나님께로 미뤄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다른 자랑거리 역시 사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임을 명심토록 합니다.
오늘 말씀은 저를 향해서 대놓고 하시는 사도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사도라는 사람들이 명심 또 명심할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서 묵상하게 합니다. 우선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사도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500여 년 전에 루터는 <만인사제직>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사제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은 다 사제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스스로 사제가 될 수 없고, 주님의 부르심으로만 사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모든 직무는 거룩한 사제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뜻하고 맛있고 건강한 빵을 구워내는 제빵사는 그 역할로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대로 알아듣기 쉽게 전하지 않고, 오히려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한 말로 바꾸는 설교자는 사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농부는 농부의 일로, 어린이는 어린이의 일로 사제직을 감당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만인 사제직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수평적 존재라는 것으로, 부름 받은 그 자리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벧전 2:9).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를 성찰할 때,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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