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64(2021. 10. 23. 토요일).

시편 시 36:5-6.

찬송 37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관가에 체포된 김대건 신부는 지독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지만, 관리들은 문초과정에서 김대건 신부의 신학문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또 라틴어와 불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옥중에서도 마카오에 있는 프랑스 신부들에게 조선 교회의 장래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고, 조선 3대 교구장 페리오 주교에게는 부디 조선 교회를 반석위에 일으켜 세워달라고 당부합니다. 1846년 헌종 14916,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나이는 겨우 24이었습니다. 이후 19845,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김대건 신부를 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마음속에 천국을 품고 있는 순교자들은 새남터에서 신의 이름을 부르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순간 새남터는 처형장이 아니라. 지상에서 하늘나라와 제일 가까운 성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일을 맞아서, 죽음을 초월한 신념이 투철한 사람으로써의 그의 삶을 한번 조명해 보았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916일 방송> b.

 

2.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 2(27-13:3)”을 읽었습니다. 사도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그리스도를 몸에 비유했는데, 몸에 속한 여러 가지 지체들이 있는 것처럼, 오늘은 그리스도를 교회에 비유함으로,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역할과 그 가치를 일깨우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평신도의 역할과 가치를 일깨우는 평신도 신학이 큰 흐름을 나타낸 것에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의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책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는 종래 강조되어 오던 제도와 전통의 중심축을 이루었던 사제 중심의 교회론을 모든 평신도들을 포함하는 교회론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바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는 슬로건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학 원리는 이미 바울 사도에게서 아주 오래 전에 출발했던 것입니다. 오늘본문이 그 대표적인 근거입니다. 그러니까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27)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교회를 구성하는 인적 자원으로, 사도, 설교자, 교육자, 기적 행사자, 치유 은사를 가진 자, 봉사자, 방언자 등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지도자급의 사람들과 함께 봉사자와 방언자들 중에는 압도적으로 많은 평신도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요성이나 순위를 따지고 나눌 것이 아니라, 각기 자신이 맡은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들어서서는 교회에 대한 역할과 이해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목적과 역할을 고민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교회의 목적은 사랑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3:1-3). 그러니까 어떤 고상한 목적이나 역할도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면 헛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서는 복음 전파도 사회봉사도 할 수 없다는 헛소리를 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매머드 교회들이 엄청난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온 행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진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려면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더 이상 모이는 교회를 강조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나와서 세상을 빛과 소금처럼 살맛나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힘쓰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교회는 선언적인 말씀에서 실천적인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안주하게 하는 말씀이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하는 말씀은 서론으로 충분합니다. 본론과 결론은 그 사랑의 실천입니다. 엊그제는 선배 목사님 내외분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교회와 세상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는 헌신적인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을 위해 힘쓰지 않는 한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처럼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는 교회로써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아무리 작아도 빛과 소금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닮으려는 투철한 각오가 뒷받침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받았다 믿는 소명이란 원천적으로 물거품과 같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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