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48(2022. 4. 25. 월요일).

시편 시 72:11-14.

찬송 40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리 내어 행복을 불러들여라. 좋은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행복해, 나는 참 운이 좋아 정말 살아볼만한 세상이야.’ 등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되뇌어 보라, 그러면 거기에 걸맞는 파동이 생겨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습관이 변하고 인격이 달라진다.” 주선희의 [얼굴 경영]이라는 책 중의 한 구절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하는 말 한 마디가 그날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 다들 공감하실 텐데요. 자 그럼 오늘 아침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지요. “난 행복하다. 난 정말 운이 좋다.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세상이다.” 이렇게 소리 내서 행복을 불러보는 수요일 아침 되시기 바랍니다.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425일 방송>

 

2.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건너다(21-31)”을 읽었습니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누스는 최초로 성경 석의법을 만들었는데, 문자적, 도덕적, 신비적, 은유적 해석이 그것입니다. 그러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역사적 해석방법이 신학에도 불어왔는데, 특히 종교개혁자들이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해석이란 성경의 역사적 시각에서 성경의 의미를 찾아보자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 한국 개신교회가 사분오열 하는데 크게 역할을 했던 본문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서양에서 신학을 공부한 국내 학자들이 전무하던 시절에는 대체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는 서양 신학에서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귀국하면서, 그동안 문자적이며 도덕적인 성경이해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장공 김재준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추양 한경직목사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 동문이지만, 장공은 진보 신학을, 추양은 보수 신학을 대표하게 되었고, 현실 인식에 있어서도 상반되는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는 학자적 양심을 가진 장공과 고통스런 삶을 짊어지고 가는 성도들을 위로하는 목회적인 양심을 가진 추양으로 갈라섰다 합니다(2012.5.3. “한경직과 김재준, 그들의 삶과 사역”, 한신대 제28회 목요강좌 발췌).

   오늘날 기독교 세계는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자들(Fundamental theologian)과는 달리, 다양한 비평학을 차용해서 문자적 해석을 탈피 역사적 해석을 지향하는 현대 신학은, 성경의 삶의 자리는 물론 현대인의 삶의 자리를 십이분 고려해서 성경을 이해하려고 힘쓰는 중입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돕는 한 가이드는, 한국 순례 팀에게서 가장 힘든 것은 여리고로 넘어가는 길에 있을 법한 강도만난 사람을 치료해 준 여관을 보고 싶다거나, 세리장 삭개오가 올라갔다는 뽕나무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출애굽을 하는 60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가 팔을 뻗어 홍해를 가르자, 바닷물이 육지처럼 되어 건널 수 있었는데, 뒤따르던 애급 군대가 바다에 들어서자 다시 모세가 팔을 뻗어 홍해의 물을 합치자, 그들은 모두가 수장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 식자 연(識者然)하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외면하는데, 그건 성경을 읽는 자세가 잘못 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기적이야기를 무시하거나 어리석다 치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폄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과학책을 읽듯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과학의 책이 아니라 신앙의 책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도와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려는 기본적인 뜻은, 하나님께서는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40년이란 기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갈 신앙훈련의 기회가 되리라는 신호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