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66호(2022. 5. 13. 금요일).
시편 시 75:4-7.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홀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만 뚝 떨어진 섬처럼 사람들과 멀어지는 기분은, 웬만해선 받아들이기가 힘든 감정이지요. 하지만 뜻하지 않은 외로움과 고독을 선택해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내면의 깊은 나 자신과 외롭게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훌쩍 성장할 수도 있지요. 황인후 시 윤용하 곡의 <고독>은 외롭고 애절한 심정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밤은 고이 흐르는데, 어디선가 닭소리. 산 뫼에선 달이 뜨고, 먼 산 슭의 부엉 소리. 외롭다 내 맘의 등불, 꽃처럼 피어졌나니. 내 사랑 불되어 타고, 임 생각아, 내 마음에 차라. 사랑아, 내 사랑아, 너 홀로 날개 돋아 천리만리 날지라도, 사랑아, 내 사랑아, 금빛 우리 님 생각, 이 몸 깊이 아롱져 이끼 핀 돌대라.”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5월 12일 방송>
2. “모세가 빛나는 얼굴로 산에서 내려오다(29-35절)”을 읽었습니다. 종교인들에게서 신비현상이 있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런 신비현상 때문에 그 종교나 종교인을 찬양하거나 숭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입니다. 한때 조희성의 영생교를 믿는 분이 교회 가까이에 살고 있었는데, 어떤 연유에선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 가정에 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생교 성도는 저를 설득할 속셈이었는지 모릅니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액자를 제 앞에 보이며, 성령 하나님께서 조희성 교주를 비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카메라에 볼펜을 가까이 두고 찍은 사진임이 훗날 밝혀졌습니다. 그 교주는 죽지 않고 영생할 것이라고 사람들을 속였었는데, 그는 2004년 6월 19일 향년 72세에 별세하자, 그의 모든 주장들이 거짓으로 들통이 났습니다. 이렇듯 거짓 신비현상을 조작하는 일도 있지만, 설명이 불가한 기적 이야기도 많습니다. 진안의 마이산에 가면 수 십기의 돌탑이 서 있는데, 이갑용이라는 선사가 동해안에서 가져다 쌓았다고 하는데, 그 선사는 축지법을 활용해서 그 많은 돌을 옮겼고 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장마철에 마을 중심부로 향하는 거대한 물길을 산 쪽으로 돌리게 했다는 장풍도사의 이야기도 그런 내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초인적이고 마법적인 신비현상을 일으킬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일로 인해서 찬양과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 역시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두 개의 돌 판을 다시 가져왔는데,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눈이 부셔서 잘 볼 수가 없으므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대면할 때는 맨 얼굴로 나아가고, 백성을 향할 때는 수건을 쓴 것입니다.
훗날 고린도교회에서 여자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할 때에 수건을 쓰도록 한 관습에 관해서 해석을 할 때나, 변화산상주일에 주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는 말씀을 해석할 때, 오늘 본문이 인용되기도 합니다. 모세의 얼굴이 광채가 난 것은 이른바 하나님의 아우라가 그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모세 자신의 얼굴에 발광체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한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머물러 있었다는 뜻입니다. 모세 자신이 위대한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 그에게 임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추풍령에는 나운몽 장로가 운영하는 용문산 기도원이 있었는데, 그곳에 다녀온 교우들은 “주님, 믿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1946년에 초가집을 짓고 시작한 용문산 기도원에서는 수천 명의 목회자를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분명한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겨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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