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83호(2022. 5. 30. 월요일).
시편 시 78:18-20.
찬송 37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서정적으로 다가옵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대상이 있으면 모든 장소가 다 그 상대를 그리는 배경이 되겠지요. 민 형식 시 김 원호 곡 <언덕에서>. 이 시도 기다리는 언덕에 대한 그런 노래입니다. 언덕에 올라서 아래를 보며 떠 올리는 상념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지요. 가곡 언덕에서는 장조이면서도 단조처럼 가락이 우울하다는 평도 받고 있는데요. 임을 그리는 감상이, 서정적이면서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산 너머 물 건너 파랑 잎새 꽃잎은, 눈물짓는 물망초. 행여나 오시나, 기다리는 언덕에. 임도 꿈도 아득한, 이슬방울. 왼종일 기다리는 가여운 응시는, 나를, 나를 잊지 마오.” “애틋한 노래, 가볍고 부담 없는 노래, 낭만과 서정함이 물씬 풍기는 노래.” 한 평론가는 가곡 <언덕에서>를 이렇게 평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제목은 <물망초> 였다고 하네요. 작사가 민 형식과 작곡가 김 원호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서로가 고교시절부터 한 동네에서 만난 오랜 친구사이이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첫사랑의 상처를 받고, 그 당시의 괴로운 심정을 각각 시와 노래로 표현을 했습니다. 1958년, 당시 부산음대 1학년생인 민 형식이, 김 원호의 집에 찾아와 무조건 그의 팔을 끌고 뒷산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민 형식은 주머니에서 물망초란 시를 적은 쪽지를 꺼내서 보여주지요. 작곡가인 김 원호는 이 시를 읽는 순간,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읊은 듯 그러한 느낌의 시상에 찡한 공감을 느끼고 즉석에서 콧노래로 멜로디를 붙입니다. 그 때 떠오른 멜로디를 집에 와서 오선지에 옮겼지요. 이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언덕에서>입니다. <언덕에서>가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68년인데요. 부산시향과의 협연으로 부산에서 가진 제1회 작곡 발표회 때입니다. 작사가 민 형식은 베를린 대학에 유학할 당시, 한국 식당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이 곡을 듣고서, 눈물이 나도록 뭉클한 감회가 느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곡가와 작사가에도 가곡으로 다가서게 된 노래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5월 29일 방송>
2. “여호수아가 통수권을 맡다(1-9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모세의 뒤를 이을 지도자로 임명하시고, 그와 나눈 말씀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없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일꾼은 아무나 혹은 누구나가 아니라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인간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헷갈려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사가 절망적일 때, 하나님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 그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던 목사님 한 분이 별세하셨을 때, 며칠 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청하게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곁에서 다정하게 대해주실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 분 대통령이 고령으로 별세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 조가의 제목이 <그대 있음에>라는 가곡이었는데,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삶의 노정에서 뜻밖의 경험으로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하나님의 역사도 비틀거리거나 퇴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에는 정주행만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부산 경성대학교 신학부의 전신인 부산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한 교수님으로부터 문선명이 득도했다는 부산 범천동 골짜기의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문 씨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을 빚은 일이라며, 자신은 그 예수를 대신해서 세상에 온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종 이론들이 그의 <원리강론>에 등장합니다. 구약과 신약 그 다음이 성약이라든지, 자신이 바로 고전 13:12의 말씀을 이루려고 온 대면 메시야라고 말입니다.
둘째 의미는 하나님의 일꾼은 아무나 혹은 누구나 가능하다는 세간의 주장과는 달리, 가장 적합한 인물로 세우신다고 말입니다. 한때 우리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수준 미달이라고 해서 정부가 신학교 수준을 높이려고 대대적인 정책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정부의 개입은 교회 지도자들의 자업자득일지 모릅니다. 학력이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소명의식만으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는 듯 큰 소리를 내질렀기 때문입니다. 가령 성경에서도 열 두 제자들을 그런 범주의 사람들로 등장시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볼 때, 그분들은 훌륭한 지도자감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호수아는 모세를 계승하기에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년대기적으로 연구한 기록을 보면, 54세 경에 출애굽에 참여하였고(출12:37,41), 아말렉과의 전쟁을 지휘하여 승리하였고(출 17:8-16), 모세의 수종자가 된 후(출 33:11), 가나안 정탐꾼으로 선발 긍정적인 보고를 드림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민 13:1-8, 14:30, 38),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되었고(민 27:15-23),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심(수 1:5, 9)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덕체를 두루 갖춘 모세의 후계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또는 아무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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