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95(2022. 6. 11. 토요일).

시편 시 78:70-72.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사랑은 손등에 내렸다가 얼른 녹는 첫눈처럼, 금방 왔다가 금방 가버리지만, 가슴속에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괴테는 첫사랑을 두고서 유일한 연애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첫사랑만큼 순수하고 가슴 벅찬 사랑이 없다는 뜻일까요? 예로부터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첫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 박목월 시 김연준 곡 <첫사랑 꿈>입니다. 첫사랑의 설렘과 낭만이 담겨 있는 작품이지요.

   “저녁노을처럼 처럼 하염없이 사라진 애틋한 꿈이여. 아름다운 첫사랑, 서로 귀를 붉히면서 서로 손을 마주잡고. 사과 밭, 꽃 그늘아래 다소 곳이 고개 숙여, 꿈꾸며 함께 거닐던 그 날의 추억이여. 흰 구름처럼 속절없이 사라진 애틋한 꿈이여, 아름다운 첫사랑, 이제 그만 아사이에 어이 그대 아름다운 첫사랑, 애틋한 추억이여.”

   박목월이 김연준 곡 <첫사랑의 꿈>, 첫사랑을 저녁노을처럼 하염없이 사라진 애틋한 꿈이라고 노래한 박목월은, 안타까운 첫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양쪽 부모가 모두 반대하는 여인과 함께 야반도주를 한 이력이, 그의 시에 많은 그림자를 남겼다고 하네요. <첫사랑의 꿈> 이 시 역시, 목월이 첫사랑의 여인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이 많이 있습니다. 작곡가 김연준 선생은 첫사랑의 애틋함 보다는 서로 귀를 붉히면서, 서로 마주잡던 그 시절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꿈꾸며 함께 거닐 던 옛님에 대한 그리움을, 느리고 깊은 선율 속에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김연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밝음과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곡이지요. 70년대의 작품 이라고만 현재 알려지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611일 방송>

 

2. “서로 사랑하라(11-18)”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방적일 뿐 아니라 넘치고 넘치는 사랑을 베푸신다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한 대학원생이 수업이 끝나고 돌아서는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은혜와 긍휼의 사랑을 하십니까?” 은혜의 사랑이란 넘치고 넘치는 사랑이며, 긍휼의 사랑이란 끝없이 참고 기다려주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돌아선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느닷없는 질문이면서 잘 들어보지 못한 질문이어서 조금 더 생각을 한 후에 아버지시니까.”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이야기가 나오면 하나님이시니까 그렇게 사랑하실 수 있을지 모르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갖는 진정성에 대해서 무게를 두지 않는 경향성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서신의 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우리들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서로 사랑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사랑이란 일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쌍방적이어야 정당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이 제 심기를 크게 건드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분을 참을 수 없던 저는 막말 수준의 말을 토해냈습니다. 더 이상 밥을 먹여주지도 않겠고, 내가 집 살 때 도와주었던 돈을 내 놓으라고 말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부자지간에도 한없이 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구나하고 말입니다. 요즘 제가 자주 읽는 인생 말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노하우를 가르치는 글들에는, 절대로 자녀에게 유산을 사전(死前)에 주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비극을 맞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요한복음서 13:34-35에는 새 계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서 15:12-17에는 이 새 계명내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주님만이 말씀하실 수 있는 새 계명이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목숨을 다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들이 그 은총에 감격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우리들 역시로 그렇게 서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너희는 주고받는 그런 사랑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질문이 나올 듯도 합니다. 자식이야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많으니까 그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사랑할 수 있지만, 부모는 어찌하여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받은 게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식은 3살까지 그의 부모가 평생 간직할 사랑을 다 주었다고 말입니다. 어린 자식이 웃어주는 모습이며, 옹알거리는 입모양이며, 아장아장 걷는 걸음걸이에서 평생 받을 사랑을 다 가졌다고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능력이 없어서 사랑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전합니다. 사랑은 능력으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하려할 때,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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