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94(2022. 6. 10. 금요일).

시편 시 78:65-69.

찬송 35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산등성이가 온통 황홀한 초록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푸른 6월의 숲은 살아 있는 생명의 소리로 가득하지요. 짙푸르게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시기입니다. 아름다운 숲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 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지요. 6월은 조금 더 가까이 신록의 속살을 보기 위해서, 저마다 산 위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그러한 때이기도 합니다. 아직 높은 산 속은 무르익은 봄이지요. 봄을 채 느낄 겨를도 없이 여름이 왔다고 한탄하시는 분들은, 6월의 산으로 향하셔야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녹음에 스쳐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쌓였던 시름을 잊게 하고, 한 번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힘내라고 가만히 속삭여 주는 것 같습니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에, 초록빛 물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구가 있더군요. 산에 오르기만 해도 온 몸에 초록물감이 들 것 같은 6월입니다. 6월이 다가기 전에 산과 숲에 들려서, 생명의 소리, 흙과 물, 바람의 소리를 꼭 한번 들어 보시기 권해드립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610일 방송>

 

2. “하나님의 자녀 악마의 자녀(2:28-3:10)”을 읽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출생의 비밀을 공개하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주 들리는 종로 4가의 한 작은 음식점 <소윤이네 집>엔 할머니 한 분이 장사를 하시는데, 일본으로 장가를 든 아들이 일본 술 사카를 만드는 사장의 사위가 되었는데, 술 공장을 세 군데나 가진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무남독녀의 남편이 된 자기 아들에게 전혀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며, 할머니 자신도 퇴계원에 몇 만평의 땅을 가졌다는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소설 같은 얘기였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스스로를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면서 출생의 비밀을 공개하고 싶어 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악마의 자녀라는 신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누군가의 자녀가 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림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1). 다행히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때문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고 바르게 사는데, 하나님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고(9),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6). 반대로 악마의 자녀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는 점과(10), 죄를 짓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8). 그래서 옳은 일을 할 수도 없고, 자기 형제를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금수저나 흙수저로 태어나는 우리 인간들의 운명과는 달리,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는 것과 악마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선수가 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개천에서 용나는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금수저에게는 보다 넓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하는 게 일반인의 생각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선조였던 아브라함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선택받은 히브리 민족의 조상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었고, 이른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받도록 불러내신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특별한 소명을 가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란 축복이면서 동시에 힘든 과제를 짊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머물러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시쳇말로 금수저든 흙수저든,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건 악마의 자녀로 살게 되었든, 그들 각자의 삶의 무게는 나름 벅찬 것은 매 일반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으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고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냐 이겠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불리를 셈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옳은 일이라 믿고 실천하기 위해서 신앙에 기대는 것은 결코 부질없는 일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면 좋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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