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691호(2022. 6. 7. 화요일).
시편 시 78:53-55.
찬송 24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을 담으며 별들을 헤아리는 낭만, 요즘엔 거의 희미해 져 있지요. 잠시 마음의 틈을 두고서 별들을 올려 단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까마득하기도 한데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주는 아늑함과 평안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곡, 현제명 작사 작곡의 <저녁별>입니다. 마치 창밖 저녁별의 아름답고 총총한 빛을 곡에 담아 놓은 것 같습니다. 시 속의 화자는 저녁별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지요. 그의 마음도 저 하늘의 별빛처럼 변치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곡을 음미하고 있으면, 그 순한 마음이 살며시 전해져 오는 것만 같습니다. “해가 눈을 감으면, 저 별 떨기는 작은 눈을 뜨고서, 밤하늘을 빛낸다. 세월 오래 지나도 변치 않네, 별빛 사람아. 너의 마음도 별빛같이 밝아라.”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곡이지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멜로디가 돋보입니다. 단조로운 가사와 리듬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는 현제명 가곡의 특징이 이 곡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제명 선생의 자료는 6.25때 모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1970년 그의 10주기 추모음악회에서 발행한 추모 음악집 한 권만 현재 보관되어 있는데요. 이곡 역시도 그 곳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6월 8일 방송>
2.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그리스도(1-6절)”을 읽었습니다. 요한일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려고 편지를 쓴다고 밝힙니다.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세상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을 분명히 밝히는데,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곧 이어 “혹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인데, 죄를 짓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싶은 게 간절한 속마음이지만, 실제는 죄를 짓지 않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 모든 죄인들을 위해서 변호해 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안내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공식적인 진실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세상에 머물고 있는 한, 여전히 죄의 위협 앞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게 또 다른 진실이기도 합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살다가 죄인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어제 저는 이른 아침에 현충원으로 가서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동문수학하던 고 육완수 소위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저와 비슷하게 가난한 시골뜨기였습니다. 우리는 쉬는 시간이며 철봉대에 매달려서 장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공통점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사범학교로 진학했는데, 마침 고교 과정의 사범학교가 폐지되는 바람에 인문계 고교로 전학, 훗날 서울대 사범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얼마간 청와대의 대통령 자녀들의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졸업 후 학훈 장교로 입대, 최전방 금화지구 비무장 지대에서 수색을 하다 지뢰를 밟아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하였습니다. 제게는 참 마음씨 고운 동무였으나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가 계속 신앙생활을 했다 해도 말입니다.
저자는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는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된 자녀인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죄의 수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불가능한 죄악된 세상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최후 심판대에 섰을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할 예수 그리스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要諦)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최후 심판과, 우리에겐 최고의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신앙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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