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98호(2022. 12. 31. 토요일).
시편 시 115:11-13.
찬송 227, 22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77년 작곡가 금수현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한 섬의 병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엽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만, 금수현은 의료진을 설득하고 환자까지 설득해서, 결국 음악회를 열수 있었지요. 빈 의자가 많은 음악회였지만,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음악을 듣는 이들 모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주된 음악은 우리 가곡인 <파랑새> 그네들과 같은 한센 병 환자인 한하운의 시에 곡을 붙인 그러한 때문이었지요.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파랑새 되리.”
시인 스스로 천형의 고통이라 표현할 만큼, 힘든 삶을 이어가면서 자유를 갈망했던, 한하운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작곡가 금수현은 한하운에 시에 곡을 붙인 <파랑새>를 유난히 아꼈다고 하지요. 한하운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시를 읽고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곡을 조심스럽게 완성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에 곡을 붙인 작곡가 하대응의 작품도 있습니다만, 금수현의 곡이 더욱 더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 12월 31일 방송>
2. “신실한 민족의 개선가(1-6절)”을 읽었습니다. 요즘 부쩍 세상이 요란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고, 대만 해협에도 전쟁의 기운이 돌고 있다 하며, 세계 도처에서는 이상 기후 현상으로 폭설과 홍수로 엄청난 피해가 생기고 있다 합니다. 이태원 압사가 아직 이렇다 할 원인도 밝혀지지 않는 이 때, 또 다시 과천시 갈현동 북의왕IC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에서 자동차 충돌로 화재가 발생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방음터널 덮개가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불길이 쉽게 옮겨 붙었고 그 결과 갑자기 하늘에서 불똥이 떨어지는 바람에 손을 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방음벽은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서, 40여대의 자동차가 혼잡한 터널 안에서 발이 묶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 그 불똥이 떨어질지 모르는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화되면 될수록 위험 요인은 더욱 더 배가되는 것을 눈치 챘지만, 피해서 달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파놓은 올무에 걸린 셈입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늘의 본문 사 26:1-6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저 유명한 마리아 찬가(눅 1:46-55)를 듣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천한 여인을 돌보기 위해서 “높은 곳에 사는 자들을 끌어내시고, 산성을 헐어 내려 땅에 내던지시고, 먼지바닥에 동댕이치시고, 천민의 발길에 채이며, 영세민의 발바닥에 짓밟힌다.”고 노래하는 때문입니다.
용두동 사거리에는 비행기 여자 승무원교육 기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 앞 큰 길 옆에는 두 개의 비행기 엔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비록 퇴역한 엔진이어서 얽히고 섥혔던 배선들은 대부분 자려나가 있었지만, 얼마나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 복잡한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최첨단의 기술력이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면 우리 인류가 누리는 편리함과 안락함 배경에는 이처럼 정밀을 요하는 기계들이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건 비단 발전된 문명사회의 약점만이 아닙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은 수 백 수천 년을 이웃으로 살던 나라들이 목숨을 건 싸움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해서 이사야는 개선가를 부르라 하십니다. 그곳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 우리 인류의 주인이신 분 야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입니다. 이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맡기는 자들에게 평화로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평화의 왕 야훼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그곳에는 높은 산 깊은 골자기가 돋우어져야 하고, 여우와 호랑이가 작은 짐승들과 즐겁게 뛰며 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사 40:3-5). 이런 희망은 인류가 절망 앞에 이르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들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평화를 잃은 뒤에야 평화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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