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41호(2023. 5. 23. 화요일).
시편 시 140:4-5.
찬송 48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대중가요처럼 우리 가곡을 즐겨 듣고 흥얼거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노래방처럼 좋은 기기들은 없어도 가족들이 모인자리에서 누군가 멋들어지게 한곡 부르고 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따르곤 했지요. 노랫말에 쓰인 시인이나 작곡가들 역시도 당시에는 곡을 만드는 무척 즐거웠습니다. 우리 가곡의 저변이 많이 축소된 요즘, 가장 기운을 잃은 이들은 작곡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들에게 새로운 곡을 통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게시지요. 작곡가 이수인, 이한삼, 임긍수, 최영섭이 바로 그들입니다. [4인 예술 가곡집]이라는 앨범을 통해서 소원했던 가곡 펜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모으기도 했지요. 오늘 소개해 드릴 작곡가 임긍수의 <옛님> 역시 [4인 예술 가곡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자작나무 우거진 호젓한 길을, 잊지 못해 찾아와 다시 걸으면. 같이 걷든 옛님이 부르는 소리,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네. 살랑대는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어도, 아롱지는 메아리만 내 귓가에 맴도네. 그리워 다시 한 번 되돌아보네. 살랑대는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어도, 아롱지는 메아리만 내 귓가에 맴도네. 자작나무 우거진 호젓한 길을, 잊지 못해 찾아와 다시 걸으면, 따라오며 옛님이 부르는 소리.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네. 보이지 않네.”
이제는 한낱 추억으로만 남은 기억, 시인과 작곡가는 그 그리움을 이 곡에 담아내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임긍수는 <그대 창밖에서>, <사랑하는 마음>과 같은 서정적인 곡으로, 우리 가곡의 맥을 잇고 있는 작곡가입니다. 현재 우리 음악을 즐겨 든 이들이 우리 가곡에게 바라는 현대적이고도 낭만적인 곡의 분위기 곡들을 선보이면서 좋은 반응을 얻어 왔습니다. 시인 정치근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노랫말과, 작곡가 임긍수의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낭만적인 멜로디의 조화가 돋보이는 곡이지요. 자작나무 숲의 메아리처럼, 곡의 긴 여운이 마음에 남는 듯합니다. 시인과 작곡가의 우리 가곡에 대한 진한 애정이 배어 있는 그러한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23일 방송>
2. “멜기세덱의 사제직(1-10절)”을 읽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아브라함을 기점으로 이전 시대를 선사 시대(先史時代), 이후 시대를 역사 시대(歷史時代)로 분류합니다. 그러니까 노아 시대까지는 선사 시대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류는 노아 시대까지는 신화적인 요소들이 성경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극복하는 이론적 근거를 삼으려 했을 것입니다. 가장 흔하게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선사 시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존 기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고(창 5:22-27), 노아는 950세를 살았다(창 9:29)는 기록입니다. 이런 신화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해서 마치 그리스 신화처럼 허구적인 기록으로 이해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신화적인 요소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말씀은 물론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영역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느 기독 의사는 모세가 120살까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는 기록(신 34:7)에 근거해서, 건강을 잘 관리하면 120살까지는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직강을 들은 저는 매일 비타민 C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분명한 장점은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피곤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왕들을 물리치고 빼앗을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와 그 전리품의 십분지 일을 멜기세덱이라는 사제에게 주었다는 기록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의의 왕이며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멜기세덱이라는 분이 실존인물인지 여부가 불명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분을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생일도 사망일도 알 수 없는 사제라고 소개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구약에서는 단 두 곳에 등장하는 인물로 창 14:18-20과 시 110:4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5, 6, 7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예표로 인용하고 있는데, 아마도 히브리서 기자는 다른 자료를 통해서 멜기세덱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에 암시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멜기세덱을 인용하는 목적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린 인물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서(계열로) 예수께서 대사제의 직무를 수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레위 지파에서만 성전 봉사자들이(제사장과 성전 관리자 등) 나올 수 있는데, 유다 지파 출신인 예수님이 대사제로써의 역할을 하신 것의 근거를 삼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설득할 목적으로 기술된 히브리서로써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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