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76호(2023. 6. 27. 화요일).
시편 시 148:1-3.
찬송 93, 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때로 그 어느 악기보다도 아름답습니다. 아카펠라나 재즈에서의 스캣(scat)처럼 뛰어난 기교로 표현되지는 않았더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는 마음을 평안하고 안정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그래서 합창단의 연주로 듣는 노래는 조금 색다르지요. 또는 편곡의 묘미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만, 합창곡은 지나친 기교를 배제한 덕분에 곡이 지닌 본래 가장 순수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 호젓한 오솔길 따라, 나 혼자 걷는 길에 들꽃이 반기네. 좁다란 계곡 사이 흐르는 시냇물도, 돌돌돌 얘기하며 옛날을 속삭이네. 저 하늘가에 떠도는 무심한 저 구름아, 어릴 제 놀던 내 친구 소식 좀 전해다오. 아, 멀리서 들려오는 해 맑은 산새 노래, 솔바람 소리에 실려 옛날을 속삭이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롯이 산길을 거니는 기분이 곡에서 느껴집니다. 작곡가 박태준이나 이수인 윤학원 등은 국내 음악계에서 특히 합창 부분에 있어서 많은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가곡은 물론 동요나 합창곡에도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작곡가 이수인의 합창곡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고향인 마산의 한 합창단에서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그 결실로 많은 합창곡을 작곡했지요. <오솔길에서> 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6월 26일 방송>
2. “거짓 사도들(1-15절)”을 읽었습니다. 두 달 후에는 베트남에서 만났던 교회 지도자들 15분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저의 열 번의 강의에 참여했던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마 <설교의 실제>를 강의할 때 강조했던 “거짓말로 설교하지 말라.”던 내용을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설교자의 말로 둔갑시키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인데, 언제나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릴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설교자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뜻은 무엇일까?”하고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런 민감한 주제에 주목하게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순결을 저버리고, 진짜가 아닌 가짜 복음을 전하게 될까봐서 말입니다. 사도는 가짜복음을 “다른 복음”이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하는데,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했는데, 거짓 사도들은 이와는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강단에서 외쳐지는 그 흔한 다른 복음들을 찾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이 한 복판에 있는 말씀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이신 예수가 통째로 빠진 설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았던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감화되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으며(행 4:31),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었고(갈 5:22), 성령 하나님을 근심하지 않도록 하나 되기를 힘쓰게 하셨습니다(엡 4:3,30). 그런데 다른 성령을 가르치는 자들은 기복 신앙과 자기만족을 은혜인양 왜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본문에서 지적하는 것들은, 복음을 돈으로 파는 행위이며(7-10절), 위선의 탈을 쓰고 속임수에 능한 거짓 사도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하며(11-12절),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깨끗한 삶을 살라는 권고였습니다(13-15절). 우리 교회의 강단에서 율법과 복음이 바르게 분별되어 선포되도록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야 기복 종교의 탈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자의적 해석에서 역사적이며 예언자적 해석으로 성경의 맥이 힘차게 흐르는 설교가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세상에 빛과 소금노릇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설교의 중심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기독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사탄으로 정죄될 것을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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