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78(2023. 6. 29. 목요일).

시편 시 148:7-10.

찬송 49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죽어가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는 장소라던가, 그동안 원치 않게 악역을 맡았던 이유를 하나하나 가쁜 숨을 몰아쉬면 털어놓지요. 덕분에 영화는 급진전하거나 반전을 통해 결론지어집니다. 서로의 오해 풀 시간이 주어지는 건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긴 오해를 대부분 해명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곤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악역으로 점 찍어둔 누군가가 있다면, 한번쯤 큰맘 먹고 해명의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생이란 영화보다 더 길고 의미 있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입을 다물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상대에게 좀 더 차분하게 설명을 한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을 알면서도 구차한 생각이 들어서 입을 다물고 마는 그런 순간이 있지요. 이제 와서 이야기한다고 해도 뭐 그리 달라질까 체념하는 마음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침묵은 스스로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을 들어내는 가장 비겁한 수단일 수도 있습니다. 과묵하다는 말로 포장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것일 때에야, 침묵은 값진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626일 방송>

 

2. “신비로운 환상과 계시(1-10)”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체험 신앙에 관해서 얘기를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는 신비 현상 곧 환상이나 입신 그리고 기적이나 계시를 체험했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끔 저의 모친과의 신앙생활을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저는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서 새벽기도회에 잘 따라다녔습니다. 자원한 적은 없지만, “새벽 기도 갈래?”라고 물으시면 .”하고 따라나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것 하나는 예배당에 엎드려 실컷 졸다가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시면 일어나 집으로 향했는데, 이른바 어머니의 2시간짜리 기도를 끝까지 뜬 눈으로 동참할 수가 없어서 졸곤했는데, 어머니는 여관을 운영하시는 오 권사님과 교회당을 나서셨는데, 두 분이 헤어지는 큰 다리 입구에서 한참 동안을 이야기를 하셨는데, 주로 화자(話者)는 오 권사님이고, 청자(聽者)는 어머니셨습니다. 그런데 오 권사님은 전날 하룻 동안에 많은 신비 체험을 하셨으며 그 얘기를 어머니에게 자랑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이 헤어지고 저와 둘이 되었을 때,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나는 1년에 4번 성경을 통독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신비 체험을 하지 못했는데, 성경을 읽을 줄 모르시는 오 권사님은 매일 천국구경을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부러워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환상이나 입신체험은 없다하더라도 기적은 셀 수 없이 많이 경험하고 살아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 날에는 기적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할 뿐이었을 뿐이었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의 서신 중 가장 난해한 대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14년 전의 어느 날, 어떤 그리스도인이 체험했다고 하는 환상과 계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2차 선교여행 중인 주후 49-51년에 설립하였으니, 14년 전이면 주후 40년경이니까 이 보다는 훨씬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심한 해인 주후 33년보다는 적어도 5-6년이 지난 어느 해로 계산이 되는데, 자신을 전면에 내 세우는 것을 꺼릴 때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기술하는 랍비들의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체험했다는 환상과 체험이란 3층 천(세 하늘)을 보았다는 내용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 당시에 유행하던 소위 영지주의 지도자들은 이원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육신을 가지고는 천국에 올라갈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이런 곡해를 염두에 두고서 한 말씀이 3층천에 올라갔을 때, “몸과 함께 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릅니다.”고 표현한 대목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평생 없어지지 아니하는 가시를 하나 가지고 살았음을 고백하는데, 그것은 이런 엄청난 계시를 보여주셔서 행여 교만 병에 걸릴까 염려하는 하나님의 배려라고 말입니다. 사도는 이 가시를 빼내 주시기를 위해서 3번씩이나 간구했지만, 결국 응답을 받지 못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 사도를 평생 괴롭혔던 그 가시에 대해서 주목했는데, 어떤 이는 안질을, 또 어떤 이는 간질을,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치질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는데, 모두 일리가 있다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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