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26호(2023. 8. 16. 수요일).
시편 시 11:5-7.
찬송 4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한 지역에서 월광 욕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던 적이 있습니다. 강열한 한 낮의 햇빛만을 즐길 것이 아니라, 고요하게 대지를 비추는 달빛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즐기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말이지요. 하지만 달빛은 그처럼 떠들썩하게 여럿이 즐기는 정서와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 싶기도 합니다. 깊은 밤의 정적 안에서 홀로 고즈넉하게 바라보는 것이 달빛과는 더욱 잘 어울리지요. 아늑한 옛적부터 수많은 음악과 시 소설의 동기가 됐던 그 고독하고 시린 달빛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청산 바위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에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의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 하여, 달 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시를 지을 당시, 조지훈과 박목월이 경주 하늘 아래서 함께 바라봤을 그 달빛의 정취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달빛 아래 홀로 길을 나선 나그네의 심경으로 세상을 그저 멀찍이 관조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인들의 마음은, 달빛만큼이나 외로운 것이었겠지요. <완화삼>은 본래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입니다만, 이 시에서는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뜻하는 시어가 되었습니다. 고려 말의 시조를 연상하게 하는 끝구절,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양 하여”를 통해서, 서로의 마음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는, 시인의 허망한 심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조지훈시 금수현 곡 <완화삼> 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8월 16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신 기적(45-52절)”과 “게넷사렛에서 병자를 고치신 예수(53-5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갈릴리 호수 혹은 갈릴리 바다는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곤 합니다. 디베랴, 그리고 게넷사렛이 그것들입니다. 이 세 명칭은 갈릴리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지방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우선 갈릴리는 팔레스타인을 크게 세 지방으로 분류할 때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로 부르는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의 이름으로 그 지역 안에 호수가 있어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고, 게네사렛은 갈릴리 바다의 북서 해안을 일컫는 평원이고, 디베랴는 갈릴리 서쪽 연안에 성읍을 건설함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갈릴리 사람으로 공생애 3년 대부분을 갈릴리 바다 주변을 무대로 활동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의 행선지를 알아낸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이나 이웃들 가운데 병든 사람들을 데려오거나 소개하는 등,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의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배고프고 병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일은 크게는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생들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원사업의 하나가 육신을 자유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배고픔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부당하고 비상식적인 제도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한 인간도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게넷사렛 해변에 운집한 사람들을 드론으로 스케치해 보았습니다. 한 떼의 무리들이 예수님의 동선을 포착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커다란 담요에 누워있는 한 사람을 들쳐 메고 힘겹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행렬을 따라서 여러 곳을 전전해 온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환자의 가족이거나 이웃 친구인지 모르겠습니다. 피곤에 지친 모습이 역역합니다. 그들의 지친 눈빛 속에는 예수님의 은총을 입어서 반드시 고쳐주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표정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같은 연립 주택에 세 들어 살던 전도관 교인 얘기를 했었습니다. 육십은 족히 돼 보이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는 삼십대 젊은 여인이 저의 방 바로 옆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신학생인 제가 찾아가서 기도라도 해 주면 좋겠다고 해서 찾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모녀는 전도관의 박태선 장로를 하나님처럼 믿고 있었습니다.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생수 얘기를 꺼냈습니다. 박 장로 집회에는 물통을 들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고, 박 장로는 쉬잇 하면서 손을 저으면 그 모든 물통의 물들이 생수로 바뀐다고 했고, 그 물을 마시거나 환부에 바르면 병이 낫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초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효험이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한 톨의 의심 없이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기적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고 싶은 간절함, 그런 절심함이 저의 드론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에 얽매인 숱한 올무에서 자유 하는 것, 우리 주님은 지금도 이런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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