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153(2023. 9. 12. 화요일).

시편 시 18:29-31.

찬송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의 시인이라 일컫는 릴케의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년의 마지막 과일이 잘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여느 때 보다 이르게 찾아온 명절을 앞두고, 우리 농민들 역시도 마음속으로 같은 기원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풍요로운 명절이 될 수 있게 며칠만 좋은 볕을 달라고 말이지요. 지금 도로위에 계신 분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기원을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짧은 명절기간동안 조금은 덜 고단할 수 있기를 말이지요. 모두가 바라는 소망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도심 안에서 명절을 보내는 분들은 큰 차이를 못 느끼시겠지만, 올 추석은 유난히 추석의 기분이 덜 한 것 같지요? 계절을 앞서 찾아 온 바람 탓에, 마음이 미리 달려간 그러한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온 가을이 유독 좀 더디 오는 것도 같습니다. 추석에도 여전히 짙은 녹음으로 뒤덮여 있는 산이며 들판이 조금은 생소하기도 하고요. 세월이 더할수록 오히려 우리의 참을성이 덜해지는 탓인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힘들다 한탄하는 사람들이 늘어서인지, 명절다운 좀 나누고 베푸는 마음도 덜 한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비록 주머니가 가볍더라도, 반가운 얼굴들을 보는 것으로, 마음만은 좀 든든하게 채웠으면 좋겠네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912일 방송>

 

2. 무화과나무의 교훈(28-31)”그 날과 그 시간(32-3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종말의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도대체 종말은 언제를 두고 하는 말이냐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노아의 때로부터 롯의 때로부터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나 주님의 공생애기간 들에서 이 종말은 항상 논쟁거리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무신경해진 것 같은 자세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듯 종말은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 보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진 먼 시간의 어느 날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우리들이 셈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한없이 길고 긴 것이 아니라, 매우 짧은 찰나적인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엊그제 미국의 한 대학교 공개강좌에서 한 대학생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토론에 나와서 자신은 엿새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성경의 주장에 실소(失笑)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무지의 소치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시간 개념을 우회로 언급한 베드로후서 3;8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들의 셈법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시 언급하는 게 유익하겠다 싶습니다만, 성경에는 주께서 곧 오신다는 임박한 종말관, “이미 우리들 마음에 오셨다.”는 실현된 종말관,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미래적 종말관을 모두 말씀하고 있는 점입니다. 그럼 어느 것이 옳으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다 옳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까닭은 개인마다 자신이 처한 형편에서는 임박한 종말이기도 하고, 실현된 종말이기도하며, 그리고 미래적 종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임박한 종말관으로 살라 권고합니다.

    어느 종말관을 선호(選好)하든 종말을 준비하는 자세는 깨어 있음이라는 것이 성경의 중심 사상입니다. 본문에서는 종들에게 소명을 주고 먼 길 떠난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같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들 인간은 하나도 예외 없이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일터에서 일하는 종들과 같다 하겠습니다. 깨어 있어서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해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주인은 어느 시간에 오신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오실 시간을 알아내려고 기를 쓰다가, 마침내 그 날과 그 시를 알아냈다고 사람들을 속인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입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냈다는 속임수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인생을 망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잠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을 말합니다. 농부는 농사일에, 학생은 공부에,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깨어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사람보다 더 현명하고 멋진 인생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